털 깎고 버려진 코카…유기범은 왜 미용을? [개st하우스]

국민일보

털 깎고 버려진 코카…유기범은 왜 미용을? [개st하우스]

길바닥에 버려진 10살 코카스파니엘
미용사 제보로 주인 찾아…견주는 상습 유기범
유기 직전 미용, 예쁘면 데려가라는 속셈

입력 2020-11-21 10:05 수정 2020-11-21 10:05
"꽃단장인 줄 알았는데..." 10살 코카스파니엘 후암이는 미용 직후 길바닥에 버려졌다. 유기동물 중에는 버림받기 직전에 깔끔하게 미용받은 경우가 많다.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아이들의 생생한 모습이 궁금하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수많은 유기동물이 버려지기 직전에 예쁘게 미용 받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범죄를 앞둔 유기범들이 죄책감을 덜고자 마지막으로 돈을 쓰기 때문이죠. 사랑의 증표인 줄 알았던 꽃단장이 사실은 유기를 앞둔 작업이었으니 동물이 받을 마음의 충격은 헤아릴 수 없을 겁니다.

이번 사연의 주인공은 서울 강동구의 한 닭갈비집에서 발견됐어요. 커다란 두 귀가 소녀의 양갈래 땋은 머리처럼 팔랑거리는 작은 코카스파니엘, 이 아이에게 얽힌 슬픈 사연을 함께 들어보시지요.

최초 발견 당시의 코카스파니엘. 온몸의 털이 말끔하게 미용돼 있다. 코카의 특징인 풍성한 두 귀가 눈에 띈다. 제보자 제공

"제 이야기가 궁금하다고요? 이리 따라오세요." 코카스파니엘 후암이가 푹신한 쇼파에 몸을 비비고 있다. 임시보호자 제공

“가족이 얼마나 찾을까” 미용받은 코카스파니엘

10kg 남짓한 코카가 닭갈비집에서 발견된 것은 지난달 말. 그때 녀석의 털은 방금 미용한 듯 가지런하고 뽀송뽀송했어요.

점주 오원진씨는 “사랑받는 아이 같다. 가족이 애타게 찾을 것 같다”며 가게에서 임시 보호하기로 했죠. 귀여운 개의 등장에 단골 손님들은 신났고 가게 이름인 ‘후암동닭갈비집’을 따와서 아이를 ‘후암아, 후암아’ 하고 불렀습니다.

"아유 귀여워~" 손님들의 예쁨을 받는 후암이. 하지만 위생 관리에 철저해야 하는 음식점 입장에서 유기견을 임시보호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제보자 제공

후암이를 귀여워하는 한편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노력도 이어졌어요. 제보자와 단골 손님들은 후암이 포스터를 만들어서 SNS, 당근마켓 등 동네 모바일 장터에 뿌렸어요. 또한 후암이 몸에 인식칩이 있으면 보호자의 이름, 연락처 등을 알 수 있으므로 제보자는 후암이를 데리고 근처 동물병원·유기동물 보호소를 찾아갔죠.

가게 앞에 붙은 후암이 가족찾기 포스터.

다행히 후암이 목덜미에서 인식칩이 발견됐지만 동물병원, 보호소 측은 인식칩에 기록된 후암이 가족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어요. 개인정보보호법상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실망한 제보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옵니다. 그것은 며칠 전에 후암이를 돌본 미용사의 제보였어요.

“인터넷글을 봤어요. 저는 후암이를 미용해준 사람인데, 견주에게 연락처를 전할게요.”
“부탁드려요. 제 연락처는요 010…”

견주는 상습 유기범…버릴거면 미용은 왜?

이제 겨우 주인을 찾겠구나 싶어 안도했는데, 다음날 후암이 견주 A씨(55)는 전화를 걸더니 후암이 안부도 묻지 않고 이상한 소리를 해댑니다.

“그냥 보호소에 보내시지…애가 자꾸 가출해서 키울 수가 없는데.”
“혹시 걔를 키울 생각 없어요?”

후암이를 안고 있는 임시보호자 모습

제보자는 뒤통수를 맞은 듯 놀랐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후암이는 길을 잃은 게 아니라 버려진 거였고, 예쁘게 꽃단장하면 누군가 후암이를 주워갈 거라는 것이 유기범의 속셈이었죠. 이를 눈치챈 제보자는 화가 나서 소리쳤어요.

“보호소에 보내면 애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버릴 거면서 미용은 왜 했어요?”

구청에 확인해보니 A씨는 지난 2년간 2차례나 후암이를 버리다 걸린 상습 유기범. 제보자는 이런 사람에게 후암이를 돌려주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동물은 법적으로 물건입니다. 그 소유권은 여전히 유기범에게 있으며 동물을 구조 혹은 보호하려면 유기범이 스스로 소유권을 포기해야 돼요. 그래서 많은 동물 구조자들이 유기범에게 포기 각서에 서명해달라며 고개를 숙입니다.

제보자도 유기범에게 소유권 포기각서에 서명해달라며 고개를 숙였어요. 유기범은 인심쓰듯 당당하게 각서에 서명했고, 혼잣말로 ‘아 다른 애들도 미용해야 되는데’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했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렇게 후암이는 법적으로 유기견이 됩니다.

제보자가 유기범으로부터 받아낸 후암이 포기각서. 유기범은 포기 사유에 "아이 관리를 하기가 어렵다"고 적었다. 제보자 제공

광고 모델 같은 코카, 후암이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현재 후암이는 제보자의 이웃인 김율(30)씨가 임시 보호 중이에요. 마침 그 집에는 10살 동갑내기 코카스파니엘이 살고 있죠.

"후암이 앉아~" 동갑내기 코카와 행동교육을 받는 후암이 모습. 처음 보는 동작도 곧잘 따라한다.

후암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동차 드라이브예요.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날개처럼 귀를 펄럭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을 나는 듯이 우아하답니다. 눈치도 100단이어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개에겐 조용히 등을 기대지만,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이면 안전거리 1m를 침범하지 않아요. 보통 코카들은 영리한 대신 짓궂은 장난을 좋아해서 악마견이라고 하는데 후암이는 얌전한 천사견이죠.


"꼭 붙들어~ 나 드라이브 즐길거야~" 후각이 발달한 개들은 차창 밖의 다양한 냄새를 맡으며 즐거워한다. (후암이의 평소 습관을 기록한 영상입니다.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하네스를 입히고 안전하게 촬영했습니다)

한 가지 걱정이 있는데요. 피부도 관절도 튼튼한 후암이는 경증의 심장병을 앓고 있어요. 혈액의 역류를 막는 심장 판막의 기능이 약 20% 모자라서, 매달 10만원 상당의 치료약을 먹어야 하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후암이에겐 남은 생을 응원해줄 팬들이 있어요. 인스타그램 후원 계정(@huam._.1020)을 통해 인친들이 벌써 200만원 가까운 병원비를 모아줬어요.

후암이를 후원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20여일 동안 200만원 남짓한 돈이 모였고 모든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된다. 후암이의 입양 이후에도 다달이 병원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인스타그램 @huam._.1020

자동차 CF모델처럼 예쁜 코카 후암이의 생생한 모습이 궁금하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후암이의 임시보호·입양을 도울 분들의 많은 연락 바랍니다.


*드라이브 즐길 줄 아는 코카스파니엘, 후암이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나이 10살, 수컷(중성화O)
-몸무게 9kg
-심장약을 복용하는 중 (6개월치 비용 제공, 추가 모금 예정)
-영리하고 온순함. 동물·사람과 친화력 뛰어남
-희망하시는 분은 서울 강동구 인근에서 후암이와 산책 가능

*입양·임시보호를 희망하는 분은 인스타그램(@huam._.1020)으로 문의 바랍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개st하우스]
“돌아와 다행이야ㅠㅠ” 가출견 72시간만에 찾은 방법 [개st하우스]
인스타그램 ‘윙크냥이’들을 아시나요? [개st하우스]
“행복하길, 날 잊을 만큼” 짜장이 보호자는 펑펑 울었다 [개st하우스]
스티로폼 속 바글바글…비글 11남매의 딱한 사연 [개st하우스]
유기 한달만에…뼈만 남은 리트리버의 슬픈 사연 [개st하우스]
시골 주민이 품은 비글 11남매…그 이후 [개st하우스]

많이 본 기사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