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은행연합회장 점찍은 민병두… 이 또한 내로남불?

국민일보

대놓고 은행연합회장 점찍은 민병두… 이 또한 내로남불?

박근혜정부 땐 ‘관피아 낙하산’ 제한 추진… 민 “지금은 내정 없이 선거로 가는 상황”

입력 2020-11-21 16:27 수정 2020-11-21 21:25
“은행장 몇 분이 찾아와 출마 제안… 선출 결정됐다면 글 올렸겠나”


은행연합회 차기 회장 최종 후보 발표를 앞두고 유력 후보인 민병두(사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적으로 출마의 변을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사실상 ‘셀프 당선 예고’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민 전 의원은 누구도 개입하지 않아 오히려 순수하게 선거를 치르게 된 상황에서 입장을 정리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민 전 의원은 20일 페이스북에 ‘은행연합회장 선출을 앞두고’라는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7장 분량의 글을 게시했다. 정부를 상대로 은행업계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적임자가 자신이라는 게 골자다. 3선 국회의원에 국회 정무위원장까지 지낸 ‘중견 정치인’이라는 이력을 강점으로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을 비롯해 금융권에서 일한 경력은 없다. 그는 오랜 정치부 기자 생활을 토대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케이스다.

민 전 의원은 “각 분야의 협회가 산업정책에 대해서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시대가 돼야 한다. 산업계와 정부가 새로운 그림을 놓고 토론할 수 있는 시대여야 한다”며 “국회의원을 하면서 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덧붙여 강조했다.

“이제는 정부 일변도가 아니라 산업계가 산업정책에 대해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부에 할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소신을 피력하는 시대가 돼야 한다” 등도 자신이 은행권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인물임을 어필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은행연합회 차기 회장 후보 선정 과정에서 후보자가 강력한 당선 의지를 대외적으로 드러내기는 사실상 처음이다. 그동안에는 후보 명단도 공개하지 않아 누가 물망에 올랐는지조차 은행권 안팎의 관련 인사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하거나 추론해야 했다.

차기 회장 후보들 중 21일 오후 현재까지 스스로 회장직 수행에 대한 의지를 밝힌 사람 역시 민 전 의원이 유일하다. 은행연합회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 17일 2차 회의에서 선정한 후보는 모두 7명이다. 민 전 의원 외에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이정환 주택금융공사 사장, 김병호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민병덕 전 KB국민은행장,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 이대훈 전 NH농협은행장이 후보군에 포함됐다. 이 중 김광수 회장은 전직 고위 금융관료, 이정환 사장은 노무현정부 국무조정실 정책상황실장과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정책고문을 맡은 친정부 인사다.

명단 발표 후 금융권은 은행연합회장이 금융 당국을 상대로 업계의 요구를 관철시켜야 하는 자리인 만큼 민 전 의원과 김 회장, 이 회장을 유력 후보로 꼽았다. 표면적으로 ‘3강’ 구도지만 실제로는 이들 중 한 명이 회장직을 맡는 것으로 이미 교통정리가 끝났다고 보는 시각도 많았다.

민 전 의원이 이례적으로 출사표 성격의 공개 입장문을 내자 금융권에서는 “결론이 더 분명해진 듯하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유력 정치인이 아무 보증 없이 ‘나 홀로’ 출마의 변을 올려 주목을 자초하지는 않았으리라는 해석이다. 은행연합회장은 대중의 표를 얻어야 하는 자리가 아님에도 공개적으로 입장문을 냈다는 점도 의아하게 여겨진다.

은행연합회는 이변이 없는 한 월요일인 오는 23일 정기이사회에서 최종 후보를 추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 전 의원은 주말을 제외하면 바로 직전(금요일)에 차기 회장으로서의 포부를 밝힌 것이다. 관례상 회장직은 현장에서 난상 토론을 벌여 결정하기보다는 특정 인물로 사전에 공감대를 이룬 뒤 당일에는 형식적 절차만 밟는다. 이 때문에 민 전 의원의 글은 출마의 변이 아니라 당선 소감에 가깝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저 화법의 문제일 수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민 전 의원의 입장문에는 ‘제가 당선되면’이라는 가정이 없어 당선 소감으로 읽히기에도 무리가 없다.

민 전 의원 선출 시에는 도덕성 논란과 함께 친정부 인사에 대한 ‘자리 챙겨주기’라는 비판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 전 의원은 2018년 3월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자 “책임을 진다”는 명분으로 의원직 사퇴 입장을 밝혔다가 두 달 만에 철회했다. 당시 한 여성 중소기업가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모두 4차례 민 의원을 만나는 과정에서 강제 입맞춤 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민 전 의원은 올해 4월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배제돼 의원 배지를 반납했지만 4년 임기는 모두 채웠다.

은행연합회장직에 오르면 민 전 의원은 국회에서 나온 지 1년도 안 돼 화려하게 대외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은행연합회장은 금융권 최대 단체장인 데다 연봉을 비롯한 처우 역시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은행연합회장 연봉은 7억원 정도로 국회의원 연봉(약 1억6000만원)의 4배가 넘는다. 한 해 연봉이 국회의원 4년 임기 동안 받는 연봉보다 많다는 뜻이다. 여론의 눈치 때문에 민 전 의원에게 4선의 기회를 주지 못한 여당이 대신 초고액 연봉직인 은행연합회장 자리를 챙겨주는 그림이 될 수 있다. 이미 민 전 의원이 지난 총선에서 공천 배제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민주당 후보에게 양보하듯 사퇴할 당시 일각에서 예상했던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민 전 의원의 이번 행보는 과거 ‘관피아 해체’를 구호로 내걸고 공직자의 사기업 취업을 제한하려 했던 이력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많다. 그는 박근혜정부 시절이던 2014년 5월 공직자 퇴직 후 10년간 취업이력공시, 행정고시 폐지를 골자로 한 법 개정을 직접 추진했다. 당시 민 전 의원이 내세운 입법 취지는 ‘민관유착 타파’였다.

민 전 의원은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제가 페이스북에 쓴 건 결정이 돼서가 아니다”라며 “결정이 됐다면 오히려 쉬쉬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선출 과정이 진행되는 3주 동안 청와대든 금융위원회든 누구도 개입하지 않고 있어서 선거로 갈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며 “여러 얘기가 나오는 터라 ‘왜 갑자기 정치인이 이 일을 하려고 하는지 페북에라도 입장을 정리해 올리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에 글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생각도 해보지 않은 자리지만 몇몇 은행장이 출마를 제안해 응하게 됐다는 게 그의 해명이다. 은행장들은 “은행이 어려운 상황이라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며 설득했다고 한다. 민 전 의원은 “아마 제 이름이 기사에 거론되는 걸 보고 생각이 있나 해서 찾아온 듯하다”며 “정무위원장 때도 시중은행장들과 일대일로 만나본 적이 없다. 라임이나 옵티머스 같은 사건에서 (제) 이름이 안 나오는 게 그만큼 조심스럽게 처신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했다.

민 전 의원이 은행연합회장직을 맡게 되면 연쇄적으로 손병두 전 금융위 부위원장의 한국거래소 이사장 내정설도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최근 함께 거래소 이사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며 2파전 구도를 형성했다.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은행연합회장에 민병두, 거래소 이사장에 손병두’는 ‘모피아’(마피아처럼 권력화한 전·현직 재무관료 집단)가 처음부터 구상해둔 밑그림이라는 얘기도 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차기 거래소 이사장 후보로 거론되던 도규상 전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금융위 부위원장에 임명되면서 손병두 전 부위원장의 퇴임이 결정됐고, 같은 시점에 정지원 거래소 이사장이 손해보험협회장으로 결정됐다”며 “금융기관·단체장 인선이 당국 인사 내용에 맞춰 흘러가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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