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조심해 임마”…전 재산 26만원 전두환 어록 제조기

국민일보

“말조심해 임마”…전 재산 26만원 전두환 어록 제조기

1997년 이후 23년 만에 광주지법에서 유죄판결 다시 받을 지 주목.

입력 2020-11-30 13:45 수정 2020-11-30 20:06

30일 낮 12시 28분쯤 광주지법.

5·18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지난해 5월 검찰이 기소한 전두환(89) 씨가 광주고법과 광주지법 사이 쪽문을 통해 법원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에쿠스 승용차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뗀 그는 손에 쥔 중절모를 다시 고쳐 쓰고 부인 이순자 씨와 함께 선고 재판을 받게 될 법정동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갔다.

89세의 고령인 전 씨는 이 과정에서 경호원 등의 부축을 받지 않았다. ‘출입허가’라고 적힌 노란색 완장을 팔에 찬 취재진이 접근을 막는 경호원들과 가벼운 승강이를 벌이며 다가섰다.

“발포 명령 부인하느냐?” “사죄할 생각이 없느냐?” “5·18 책임은 인정합니까”라는 질문을 쏟아내자 그는 예상과 달리 묵묵부답했다. 얼굴 절반을 가린 흰색 마스크만 전 씨의 숨결에 미약하게 펄럭였을 뿐이다.

하지만 전 씨는 광주를 향해 출발하기 직전 연희동 자택 앞에서는 험한 말을 내뱉었다. ‘전두환을 법정구속하라’고 외치는 시위대에게 ”말조심해 임마“라고 버럭 화를 냈다.

전씨가 이번 재판 과정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짜증 섞인 막말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3월 광주지법 앞에서 “발포 명령 부인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이거 왜 이래”라고 발끈해 공분을 산 바 있다. 1980년 그날 이후 집단발포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줄기차게 부인해온 전씨가 광주에서 처음 뱉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40년 만에 광주 법정에서 우여곡절 끝에 선고 판결을 받게 된 전 씨는 5·18 당시 유혈진압을 강행한 군의 실권자.

전 씨는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됐지만, 여전히 삼엄한 ‘경호’ 속에 호의호식을 이어오고 있다. 골프장에서 캐디에게 팁을 건네주며 “이제 내 전 재산은 26만 원이 전부다”는 농담을 한 사실은 그동안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다.

전씨가 이날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 1997년 내란목적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등 형사처벌받은 지 23년 만에,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다시 처벌을 받는 신세가 된다.

그는 25년 전인 1995년 12월 2일 서울지검 청사로 소환될 처지에 놓이자 자택 앞에서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전 씨는 당시 측근들을 대거 세워둔 채 국민을 향해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위풍당당하게 무죄를 주장하던 전 씨는 검찰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에 의해 기소돼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데 이어 2년 후 대법원에서 내란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웃지 못할 어록을 남겼다. 지난해 11월 7일 강원도 홍천 골프장에서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가 5·18의 책임을 추궁하자 “추징금은 자네가 대신 좀 내주라”고 유명한 어록을 추가했다.

광주지검은 지난달 전씨가 불출석한 가운데 진행된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부정의한 역사가 반복하지 않도록 역사 정의를 바로 세워 달라”며 전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구형했다.

전두환의 후안무치에 대해 광주시민들은 “전씨가 부인해온 헬기 사격이 재판부에 의해 공인돼 지금까지 반쪽에 그친 5·18 진상규명을 완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 씨를 단죄하는 역사적 판결을 통해 40년 동안 왜곡된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5·18 왜곡세력의 준동을 종식하는 역사적 재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역사의 격변기와 5·18 관련, 재판과정에서 그동안 숱한 화제와 뒷말을 남긴 ‘어록 제조기’ 전씨가 이번 선고 공판에서는 어떤 어록을 만들어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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