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부산 아귀찜집 사장의 인생을 바꾼 리뷰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부산 아귀찜집 사장의 인생을 바꾼 리뷰

입력 2020-12-11 16:08 수정 2020-12-11 16:21
부산대 에브리타임 캡처

혹시 벼랑 끝에 내몰린 것 같은 적이 있으시나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아 절망한 경험 말입니다. 분명 저 너머에 희망이 있을 것 같은데 체념한 적, 한 걸음 앞은 추락이라 그래야만 했던 기억, 있으시나요?

여기 이 젊은 사장님은 올해 11월이 꼭 그랬습니다. 사장님은 부산대 인근에서 아귀찜 집을 운영합니다. 가뜩이나 작은 가게인 터라 매출이 크지 않은데, 찬바람과 함께 시작된 코로나19 3차 대유행은 사장님을 매섭게 때렸죠. 사장님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정말 포기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죠. 그때, 사장님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 리뷰가 올라왔습니다. 이달 초 일어난 일입니다.

한 부산대 학생은 지난 5일 대학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아귀찜 사진을 올렸습니다. 커다란 통이 넘칠 만큼 가득 찬 아귀찜은 한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죠. 콩나물보다 아귀, 오만둥이, 미더덕 등이 푸짐하게 들어있었고요. 작성자는 “이게 1인분인데 13000원에 전이랑 샐러드가 같이 온다”며 “배달해주시는 분 항상 친절하고 사장님도 세심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귀찜 사진이 네티즌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걸까요? 이 가게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논란 중인 아귀찜 가격’ ‘논란의 13000원짜리 아귀찜’ 등의 제목으로 관련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조작 논란까지 생길 정도로 가격 대비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주문을 했더니 리뷰와 똑같은 양의 아귀찜이 배달됐고, 맛도 아주 좋았다는 후기 글도 속속 등장했죠.

배달앱 캡처

배달앱 캡처

한마디로 ‘대박’이 나지 않았을까 짐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 배달앱에 올라온 사장님의 글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손님 중 부산대 학생분이 커뮤니티에 홍보 글을 올려주셔서 생전 처음 조기 퇴근을 하는 경우가 생겼네요. 진짜 너무너무 바빠서 배달이 제대로 나갔는지 모르겠네요. 혹시라도 배달이 늦어진 손님들은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최고 기록을 세워서 너무 좋네요…커뮤니티의 힘을 처음 느껴봅니다. 마감 후 추가로 전화해주신 단골손님, 축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장님은 10일 밤 다시 글을 올려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놨습니다. 어릴 적부터 장사하는 게 꿈이었던 터라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시작한 첫 가게를 망했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6~7평짜리 작은 가게를 내게 된 거라고요. 그러나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은 “그나마 남았던 보증금도 가게 유지를 위해 6개월 만에 다 썼다”며 9년 동안 연애도, 여행도 포기한 채 20대 내내 일에만 매달렸는데 결국 꿈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사장님이 배달앱에 올린 글. 배달앱 캡처

“사실은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폐업하려고 했습니다. 마지막 재산이었던 자동차를 팔고 나니 1200만원이 생기더라고요. 이 돈으로 가게세, 밀린 재료비, 세금, 공과금 등을 내니 차 판 지 하루 만에 300만원이 남았습니다. 이게 불과 6일 전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번 달 포장 용기만 소진하고 폐업하기로 했는데…. 너무나 감사한 손님 덕분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루 200~300통의 주문 전화를 받게 됐습니다. 작은 가게인 터라 너무 죄송하지만 다 해드릴 순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24시간 영업하며 발버둥쳤는데…. 매일 가게 리뷰를 보며 걱정하는 친누나도 이런 사정을 몰랐습니다. 이 글을 보면 누나는 울 것 같네요.”

사장님이 힘겨운 시간을 버티는 동안, 그의 노력을 알아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었던 ‘단골’들입니다. 한 단골은 “이때다 싶어 글을 쓴다”며 사장님의 미담을 전했죠. 유독 힘겨웠던 날 ‘우울해서 혼자 술을 마시려고 주문한다. 밑반찬과 전은 빼달라’는 주문 메모를 남겼더니, 배달 후 사장님의 정성스러운 문자를 받게 됐다고 했습니다. 사장님은 그 문자에 “주문 감사드립니다. 소주는 밑반찬, 전 대신 넣었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라며 “너무 우울해하지 마시고, 아귀찜과 소주 한잔하시고, 푹 주무시고 기분 좋아지길 바라봅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 사연을 전한 단골은 “이후에도 미담이 많은데 궁금한 거 댓글로 남겨주면 후기를 더 써보겠다”고 했죠.

사장님의 문자에 감동받았다는 부산대 학생의 글. 부산대 에브리타임 캡처

사장님은 20대의 대부분을 장사에 매달리며 얼마나 많은 시간 외로움과 싸웠을까요. 성공을 의심하는 주변의 시선을 애써 모른 척하며 버텼겠지요.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도 싸워야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장님은 최선을 다해 손님을 대했고, 손님들은 그의 진심을 기억했습니다. 이런 가격에 이런 양은 처음이라고, 꼭 먹어보라고 적극 추천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는 걸 보면요.

그러니 부산대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리뷰는 어쩌다 생긴 행운이 아닐 겁니다. 사장님의 이런 사연이 담긴 글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리뷰’라며 인터넷에 퍼지고, 많은 네티즌이 감동하는 것 역시 우연은 아닐 테고요. 그의 인생역전은 묵묵히 노력한 시간들이 만들어준 것 아닐까요.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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