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내년엔 매일 만나길’ 소원에 예뻐진 ‘학교길’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내년엔 매일 만나길’ 소원에 예뻐진 ‘학교길’

알록달록 뜨개 작품으로 꾸며진 한 초등학교 주변 눈길
‘뭐라도 해보자’ 손 모은 엄마들
“내년엔 매일 친구 봤으면” 소원 단 아이들

입력 2020-12-25 04:00 수정 2020-12-25 04:00
경남 진주시 충무공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직접 적은 소원을 담아 만들어 등교길 울타리에 건 소원 테슬. 충무공초 제공

경남 진주시에 한 초등학교 담장과 가로수들이 알록달록 따뜻한 옷을 입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뜨개 작품들이 가로수를 감싸고, 학교 울타리에는 예쁜 실이 함께 장식된 종모양의 소원 장식(테솔)이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달려 있습니다.

이 학교는 진주시 충무공초등학교로, 가로수를 장식한 뜨개 작품은 이 학교 뜨개동아리인 ‘짜요’ 회원 학부모들이 한해 동안 만든 것들입니다. 당초 연말 전시회를 계획하고 만들어온 작품이었지만 코로나19 상황에 전시회는 여의치 않았습니다. 방법을 찾다 한 해 내내 계속된 코로나19로 무기력해진 아이들과 동네 주민들에게도 힘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자는 마음이 모였습니다.

경남 진주시 충무공초등학교 학부모 뜨개질 동아리 '짜요' 소속 엄마들의 재능기부로 꾸며진 따뜻한 가로수 모습. 충무공초 제공.

울적한 연말 분위기에 메마른 겨울 나무 모습까지 더 삭막하니, 나무에 옷을 입혀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어쩌다 한번 하는 등교길(이 학교는 학년별로 주1~2회 등교하고 있다)에서라도 즐거움을 주면 좋겠다는 데 마음이 모였습니다.

엄마들의 아이디어에 학교도 적극 움직였습니다. 기왕이면 무료한 아이들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소원을 써서 예쁜 색의 술(테솔)을 달아 거는 테솔 만들기 키트를 준비해 원하는 아이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아이들은 등교일에 키트를 받아가 집에서 만들어 와 다음 등교일에 학교에 제출했습니다.

작지만 새로운 활동이 좋은 자극이 되길 기대했던 마음은 적중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학교 활동에 시시해했을 아이들도 예상보다 많이 테솔 만들기에 참여했습니다. 박민정 선생님은 “100명 정도 예상했는데 200명 가까이 신청해서 키트를 더 준비해야 했다”면서 “자신들의 소원이 걸려 있으니 아이들도 자기 작품을 찾으며 더 좋아하고, 이번에 참여못한 아이들도 다음에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전했습니다.

바느질 동아리와 꽃꽂이 동아리, 그림 동아리 등 교내 5개 학부모 동아리도 모두 각자의 재능을 모았습니다. 손수 만든 인형과 꽃꽂이, 그림 액자들이 학교에 전시됐습니다.

박 선생님은 “엄마들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너희도 잘 지내라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하시더라”면서 “학부모 동아리와 선생님, 학생이 다 같이 공유하기 위한 활동을 하니 시너지가 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학교 5학년생을 둔 한 엄마는 “요즘 안 그래도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은 딸이 집에만 있으면서 더 무기력해져 걱정이었다”면서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오랜만에 학교에서 하는 활동이라 좋았던 거 같아 더 안쓰럽고, 고맙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코로나로 한 해를 다 보내려고 보니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아이를 보면 안타깝고, 솔직히 힘도 들고, 이 울적함을 누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게 화도 났다”면서 “그런데 그냥 원망하고 있는 것보다 뭐라도 해보자고 나서니 오히려 스스로에게도 힘이 되는 것 같아 좋았다”고 전했습니다.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병행하며, 계속된 변화에 대응하느라 지친 건 선생님도 마찬가집니다. 박 선생님은 “아이들이 건 소원들을 보면서 선생님들도 학교에 나오면서 자꾸만 눈이 가고 위로 받았다고 하셨다”고 전했습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도 쉽지 않고, 안팎으로 힘든 일이 가득한 상황을 생각하면 그저 울적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우리 자신일지 모릅니다.

“코로나가 빨리 사라지고 매일 학교에 등교하면 좋겠어요”“매일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싶어요” 등 태슬에 적힌 아이들의 소원이 내년에는 이뤄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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