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같은 사건 또 있었다…아동학대신고 현장의 함정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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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같은 사건 또 있었다…아동학대신고 현장의 함정 [이슈&탐사]

[바뀐 법, 제2의 정인이 구할 수 있을까] ②신고해도 막지 못한 죽음

입력 2021-01-13 00:08

‘아이가 아프다’며 A병원에 찾아온 부모는 아동학대 의심 신고로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아이 상처가 학대로 인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담당 의사가 신고한 것인데 수사단계에서 ‘혐의없음’ 판단이 나왔다. 부모는 병원을 찾아와 횡포를 부리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얼마 후 또 한 번 병원을 찾아야 했다. 이번에는 해당 부모가 B병원으로 옮겨 아이를 데려갔다. 이곳에서도 의사는 아이의 학대 피해 가능성을 의심해 신고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고,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결국 사달이 났다. 다시 아이가 크게 다쳤다. 폭행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상처였다. C병원 측은 아이를 보자마자 학대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아이 상태는 이미 호전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치료 과정에서 사망했다. C병원 의사는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수사기관의 판단으로 죽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아이를 더 보호해 줄 방법이 없다”고 호소했다.

신고의무자들의 회의감
아동학대는 사망 사건으로 비화하기 전 대체로 시그널이 있다. 상처는 외부에서 알아챌 수 있는 적극적 신호고, 이를 처음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곳이 병원이다. 병원 의료진을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 지정한 이유다. 그런데 상당수 의료진이 신고에 대한 회의감을 토로하고 있었다.

김윤경 고대 안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매년 3~4건 이상 그런 일을 경험한다. 제가 신고해서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경우는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해당 아동은 비장 등 내부 장기가 심각하게 파열된 중증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진이 봤을 때 명백한 학대로 보인다 싶은 것도 경찰 조사에서 그냥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며 “의심사례를 신고하면 신고대상자들이 의사를 상대로 비난을 많이 하는데, 무혐의라도 나면 정말 이런저런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진들이 치료 과정에서 학대를 의심하는 사례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일정한 형태는 있다고 한다. 다른 대학병원 의사는 “중증 뇌출혈, 영유아의 경막하출혈, 망막출혈, 회복속도가 다른 여러 뼈의 골절 등은 (학대 피해로 볼 만한) 교과서적인 내용이다. 그런 게 딱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기준에 따라 신고를 하는데 나중에 경찰에게서 ‘그럴만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부모들이 그래 보이지 않는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학대 시그널을 포착했지만 후속 조치가 이어지지 않으면 실패의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의료진이 기대하는 건 아이와 보호자의 분리였는데, 실제로는 안 되는 경우가 많고, 되레 보호자가 와서 병원을 뒤집어 놓는다. ‘네가 뭔데 나한테 이런 걸 했느냐’ ‘경찰이 아니라고 한다’는 식”이라며 “열심히 신고해도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하면 정말 (정도가 심한) 것 외에 웬만한 건 얘기하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은소희 고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대학병원 같은 경우 진료 부서와 신고 부서(의료지원팀)가 구분돼 있어서 의사들이 학대의심을 판단해 신고하기가 그나마 수월한데도 보호자의 협박이나 응징은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료와 신고 주체가 같은 소규모 병원의 경우 피신고자들의 비난 가능성이 커 적극적 신고를 꺼릴 우려가 있다는 의미다.

신고의무자들이 포착한 학대 시그널이 ‘별일 아닌 것’으로 판단돼 아동에 대한 개입이 중단되는 사례가 반복되면 시스템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아동학대 초기 시그널에 대한 기민한 대응에도 실패하는 것이다.

초기 시그널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김 교수는 “처음 내원 때 제대로 된 조사가 안 되면 가해 부모는 신고당한다는 걸 학습하게 되고 ‘아이가 스스로 다쳤다’ ‘자학하는 아이다’ 이런 식으로 그럴듯한 거짓말이 는다. 그러다 아이를 잃는다”며 “피해가 경미해 손을 쓰면 구할 수 있는 아이들을 살려야 하지만, 학대가 사건화가 되지 않으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불신의 확대

또 다른 신고의무자인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 보육·교육 시설 종사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엄마한테 골프채로 맞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가 담임교사에게 말했다. “시험을 못 봐서 맞았다. 이전에도 맞았다”고 말하는 아이의 등에 멍 자국이 선명했다. 교사는 곧바로 학교에 통보하고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경찰과 아이의 아버지가 학교에 왔다. 학교로 달려온 아버지는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며 교사들에게 항의했다. 교사들은 이때 ‘학부모에게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조사는 이뤄졌지만 아이는 부모와 분리되지 않았다. 아이 몸에 상처가 있었지만 일시 분리될 경우 아이가 지내야 할 환경이 여의치 않다며 원가정에 복귀됐다. 이후 교사가 매일 아이를 주시하며 관리를 하고, 부모 상담을 진행하면서 다행히 학대는 재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교사들은 신고자로서 자신의 신변이 보호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됐고, 신고하더라도 특별한 조치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을 보며 학대 신고의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초기 시그널이 경미하면 개입이 불발될 여지가 크다는 걸 신고의무자들은 수차례 경험해왔다. 결국 사례를 접한 개개인이 혼란을 뒤집어써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추운 겨울날 자꾸 얇은 내복과 얇은 점퍼만 입고 등원한 3살짜리 아이를 만난 어린이집 교사는 부모의 방치, 방임을 의심했지만 아동학대로 신고해야 할지 망설였다고 했다. 해당 교사는 “아이 어머니에게 ‘아이가 추울 텐데 더 입혀서 등원시켜주세요’라는 말을 꺼내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며 “신고한다고 보호자의 방임이 해결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신원 노출로 인한 피해를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처벌 중심 대응의 악순환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가면 학대예방경찰관(APO)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현장으로 가 신고 내용을 조사한다. 이때 수사가 본격 진행되려면 학대피해가 심각하거나 아동이 처벌 의사를 보여야 하고, 유죄를 입증할 수 있을 만큼의 정교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학대 초기 단계의 증거는 대체로 빈약하고 경미한 사안이 많다. 자연히 조치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에 대한 신고의무자들의 불만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옆집에서 엄마가 애를 쥐 잡듯 해요. 엄마가 욕하고 소리지르고 난리 났어요.” 이웃의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하지만 경찰이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이 끝나있고, 주변은 고요했다. 학대예방경찰관(APO)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아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 아동학대 체크리스트에 있는 질문을 하였지만 아이는 별다른 답이 없었다. 부모는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아이에게 명백한 외상이 없다면 사건을 더 진행하기 어렵다.

2019년 1월 생후 2개월인 아들을 때려 사망하게 한 아버지 D씨의 판결문에도 학대 사실 증명의 어려움이 잘 나타나 있다. 아이는 주먹으로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그런데 부검에서 다른 상처가 발견됐다. 국과수는 “아이의 몸 여러 군데서 오래된 갈비뼈 골절이 발견됐고, 이는 과거에 가슴 부위에 수차례 둔력이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증언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다른 방식의 학대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D씨는 이에 대해 아기 가슴에 딱밤을 때렸고, 아이가 잠에서 깨지 않게 타월로 힘껏 묶어뒀다고 진술했다.

해당 사건 재판부는 “딱밤과 묶는 행위만으로 신생아의 갈비뼈가 골절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드러나지 않은 더 강한 학대가 평소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폭행의 증거를 입증하지 못해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아동학대 사법처리 절차 (자료: 아동권리보장원)

일선의 한 APO는 “아이가 의사 표현이 어려우면 현장에서 상황판단을 해야 하지만 욕을 했다는 게 사건화의 명분이 되는지 등 세세한 기준이 없다”고 토로했다. 외상이 없고 아동의 의사 표현도 없으면 분리조치가 어렵고, 법원에서도 아동학대로 인정하지 않아 애매한 상황은 그냥 넘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현장에서 아이가 ‘엄마한테 맞았어요’라고 말해도 다시 경찰서에 와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물론 수사가 종결되더라도 APO는 신고 내용을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에 입력하고 관할자치구에 통보한 뒤 추가 상황 확인 조치를 한다. 자치구는 이후 해당 가정과 현장조사 일정을 조율하고 내부 조사를 진행한다. 이를 토대로 사례회의를 열어 학대사례로 볼 것인지를 다시 결정한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종결되면 사례관리는 난관에 봉착한다. 경찰이 수사를 종결했는데 왜 조사하느냐는 반발 때문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너희들이 뭔데 남의 집에 와서 이러느냐. 꺼져라”는 말을 항상 듣고 산다고 말했다.

법상 아동보호기관의 조사를 거부하면 과태료를 물게 했지만 현장은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빈곤한 위기 가정을 상대로 과태료를 물게 하는 게 아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 저희가 피신고자인 부모에게 빌고 빌어서 겨우 아이를 만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인이 법은 정인이를 구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대책이 정인이 사건처럼 극단적 사건에만 초점이 맞춰진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사와 처벌에만 집중해 아동의 보호와 사회적 양육, 가정회복 등의 근본적 조치 부분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국회가 정인이 이름을 붙인 법이 시행돼도 이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경찰이 즉시 수사를 개시하고,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현장조사 범위가 넓어져도 경미하다고 판단되는 학대의 경우 아이가 구조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생각이다.

신수경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는 “이번에 바뀐 법을 미리 적용했어도 정인이가 가정에서 분리되고 잘 살았을 거란 확신이 없다”며 “1차 신고와 2차 신고 내용을 개별적으로 판단해 보면, 신고 당시 사건화가 됐다고 하더라도 부모교육상담이나 기소 유예 처분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2회 신고 시 즉시 분리’가 도입돼 정인이가 분리됐어도 금방 원가정에 돌아갔을 확률이 높다. 분리됐다가 돌아간 뒤 더 학대당하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고 우려했다. 이는 아동학대 사건을 오래 경험한 변호사들이 공통으로 걱정하는 내용이다. 신 이사는 “경직된 법률을 만드는 식의 대책은 결국 ‘출동했고 수사했으니 그만’이라는 식의 기계적 행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전웅빈 문동성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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