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잃은 첫째가 물었다 “아빠, 판사님이 30년 주셨지?”[인터뷰]

국민일보

동생 잃은 첫째가 물었다 “아빠, 판사님이 30년 주셨지?”[인터뷰]

지난해 9월 서대문구 음주운전 사망 사고
‘재범’ 가해 운전자, 1심서 징역 8년
유족 “피해자 아닌 가해자 위한 법” 절규

입력 2021-01-15 00:02 수정 2021-01-15 00:02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씨의 둘째 아들. 오른쪽은 지난해 9월 6일 사고 직후 현장 모습. 가해 운전자 김씨의 SUV가 들이받은 가로등이 쓰러져 있고 아들의 사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따. 이씨 제공

서울 서대문구 햄버거 가게 앞에서 여섯 살 둘째 아들을 음주운전 차량에 잃은 아빠 이모씨는 지난 12일 1심 재판 직전 50대 가해자의 아들을 따로 불렀다. 그러고는 집에서 써온 편지와 용돈 10만원을 건넸다. 아버지의 죄 앞에 대신 고개 숙인 20대 청년은 펑펑 울었고 그런 그에게 이씨는 말했다. “난 네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지만 하루아침에 가해자의 아들이 됐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음주 처벌이 강했다면 아버지도 분명 운전대를 잡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날 판사는 가해자 김모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사고 당일인 지난해 9월 6일. 김씨는 정부의 방역지침을 어기고 조기축구 모임에 나가 술을 마셨고 그대로 차에 올라 7㎞를 달렸다.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44%로 몸조차 가누지 못해 조사마저 불가능했다. 유족들의 용서는 없었고 동종의 범죄 전력까지 있었지만, 재판부는 김씨가 거듭 제출한 반성문과 자동차보험 가입 여부를 고려해 내린 판결이라고 했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두 아이에게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부모는 절규했다.

노란색 동그라미가 김씨의 차량이다. 경찰 조사 결과 충돌 당시 그는 브레이크 조차 밟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 제공

이씨가 집에 돌아오자 아홉 살 첫째 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판사님이 뭐라고 하셨어?” 첫째는 그날 동생의 사고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다. 술에 취해 휘청이던 SUV 차량은 가로등을 들이받으며 멈춰 섰지만 그 충격에 쓰러진 가로등은 둘째를 덮쳤다. “살려주세요”를 외치며 동생을 바라보던 첫째는 아직도 ‘나만 피했다’는 자책감을 느끼고 있다.

허탈한 결과에 입이 떨어지지 않던 이씨는 “네 생각은 어때?”하고 첫째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징역 30년. 아홉 살이 생각한 그나마 적당한 형량이었다. 조심스럽게 꺼낸 ‘8년’이라는 현실에 첫째가 꺼낸 말은 아빠의 마음을 한 번 더 울렸다. “8년 후면 고등학생밖에 안 되잖아. 그때도 아직 난 학생이라 힘이 없는데….”

잘못을 비는 가해자의 아들과 하루아침에 떠나보내야만 했던 내 아들. 이씨는 혼란하고 복잡한 마음이 들 때마다 사법부를 향해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진다고 했다. 어떤 처벌이 내려져도 떠난 둘째가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목소리를 냈던 건 음주운전을 강력히 처벌하는 판례를 만들고 국민에게 경각심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끝내 실망스러운 판결이 앞에 놓였다. 그 순간 이씨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가해자가 항소하면 고작 4~5년이겠구나, 음주운전 피해는 또 반복되겠구나’였다.

만취 상태로 7㎞ 정도를 달리던 김씨는 햄버거 가게 앞 가로등을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쓰러진 가로등에 머리를 크게 다친 이씨 아들은 사고 1시간 만에 숨졌다. 이씨 제공

이 이야기들은 이씨가 선고 다음날인 13일 국민일보와 통화하며 털어놓은 내용이다. 그는 재판부의 기계적인 판결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위한 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음주운전은 솜방망이 처벌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씨의 호소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1심 재판 전까지 가해자의 사과나 의사 전달이 있었나

“그쪽에서 우리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합의할 생각도 없었고 용서할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 이후로 전달받은 건 없다. 가해자는 판결 전날까지도 반성문을 제출했더라. 확인한 것만 해도 100건이 넘었다. 본인도 당연히 죄책감을 느끼고 있겠지만 감형을 위한 액션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가해자 아들과의 만남이 쉬운 결심은 아니었을 것 같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앞서 지난달 17일 구형 당시 가해자 가족을 봤다. 너무 흥분해서 아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하니 ‘가해자가 아닌 그 가족일 뿐이다’라는 생각에 미안한 감정이 들더라. 그래서 ‘애초에 처벌규정이 강했다면 너의 아버지 역시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을 거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뒀었다.

그리고 재판 직전 잠깐 얘기 좀 하자며 불렀다. 나이를 물었더니 26살이라더라. 10만원 정도를 함께 넣어 둔 편지를 주면서 ‘그때 욕했던 것 사과한다. 너 역시 한 부모의 소중한 자식인데 얼마나 지치고 충격이 크겠냐. 하지만 나는 내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다. 부디 이것 때문에 너의 꿈을 포기하지 말아라. 밥 잘 챙겨 먹고 중심을 잡으라’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해줘야 그 아들도 조금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 상대방 반응은 어땠나

“많이 울면서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더라. 그 아들이 죄송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워낙 착하고 선하게 생겨서 마음이 쓰였다. 더 안타까운 인연이다 싶은 건 알고 보니 우리 가족과 가해자 가족이 한동네에 산 적이 있었다는 거다. 좁은 곳이라 엘리베이터 안에서든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이웃으로 시작한 인연이 악연이 됐다.”

- 그렇게 복잡한 마음이 들수록 사법부에 대한 원망이 크겠다

“맞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음주운전 예방이다. 이번 판결이 경각심을 줘 음주운전 사례가 줄고 재범률이 낮아지길 희망했는데 너무 실망스럽다. 음주운전에 관해서는 절대 관용을 베풀면 안 된다. 판사님도 어느 기준에서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항소하면 4~5년밖에 안 되겠구나’였다. 현실적인 판결을 원한다.”

- 양형 사유에 대해 특히 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무기징역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래도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고 그 후로도 을왕리 사고 같은 사례가 있어서 설마 낮은 판결이 나올까 싶었다. 가해자는 분명히 항소를 할 텐데 그럼 결국 4~5년으로 끝나게 되는 거다. 자동차보험 가입 여부가 참작됐더라. 자동차보험을 안 든 사람이 어딨나. 그런데 법은 이걸 상대방에게 보상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 너무 씁쓸한 부분이다. 이건 피해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가해자를 위한 법밖에 안 된다.”

- 지난 인터뷰(기사: “6살 내 아이 죽인 음주운전자, 사과없이 반성문만 다섯번” [인터뷰], 지난해 10월 22일) 당시 ‘두 아들에게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다. 허탈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은데

“첫째가 선고 날을 알고 있었다. 집에 돌아갔더니 ‘몇 년 나왔어?’ 하고 묻더라. 네 생각은 어떠냐고 되물었더니 ‘30년?’ 이라더라. 너무 놀랐다. 어린아이지만 가해자에게 큰 벌이 내려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다. ‘판사님께서 8년 정도 내려주셨어’ 했더니 첫째가 ‘8년이면 난 고등학생밖에 안 되는데, 그때도 난 학생이라 힘이 없잖아’라고 말했다.”

- 가장 걱정되는 건 가족들의 심리 상태다. 현장에 있었던 첫째나 아내의 건강은 좀 어떤가

“심리상담사가 말하길 첫째는 커가면서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더 커질 수 있다더라. 지금도 불안도가 굉장히 높고 아빠엄마가 슬퍼하는 것에 대해 눈치를 많이 본다. 이걸 어떻게 극복시키고 치유해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누군가 동생의 죽음에 대해 묻는다면 ‘그냥 모른 척 하겠다’고 하더라. 그것보다는 ‘응 맞아. 그래서 나도 마음이 아파’라고 말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아내 역시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음식을 잘 못 먹는다. 죽고 싶다는 이야기도 많이 했다. 둘째가 우리 부부의 꿈에 잘 나타나지 않는데 아빠엄마에게 화가 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 미안하다. 나도 멀쩡해보이지만 사실 안 좋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아내와 첫째를 생각하며 다잡곤 한다.”

- 1심이 허무하게 끝났지만 앞으로 이겨내고 싸워가야 할 것들이 많겠다

“음주운전은 모든 사람이 고통받는 일이라는 걸 전하고 싶다. 특히 유족들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평생 안고 산다. 음주운전은 살인과도 같다는 걸 꼭 알아주셨으면 한다.

가해자의 잘못은 명확한 거지만, 그걸 판단하는 사법부의 기준에도 큰 회의감을 느낀다. 이슈가 된 후에야 움직이는 법과 제도들도 문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음주운전 사고는 분명 일어난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바뀔 수 있나. 하루빨리 본보기가 될 수 있는 강한 처벌이 나왔으면 좋겠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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