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가 벌어준 30분, 한 생명이 살았습니다 [인터뷰]

국민일보

라디오가 벌어준 30분, 한 생명이 살았습니다 [인터뷰]

입력 2021-01-16 00:07
기사와 무관한 사진(왼쪽)과 황금산 피디. 게티이미지뱅크, 연합뉴스

청취자가 보낸 한줄의 짧은 메시지는 평소와 다른 느낌을 줬다. 30년 베테랑 라디오 PD는 직감적으로 위험 신호를 감지했다. 그 다음 몇 분간 그가 내린 빠른 조치는 한 사람의 운명을 갈랐다. 자칫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었을 한 생명이 살아난 것이다.

라디오 PD의 발 빠른 조치가 청취자를 살린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쏟아지는 문자를 무심히 넘기지 않고 청취자의 기분까지 읽어낸 예민한 촉과 빠른 판단력의 주인공. 그는 TBN 대전교통방송 황금산 PD였다.

구원이 된 신청곡 '홀리데이'

‘저는 교통방송 덕분에 결혼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삶이 너무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듣고 싶습니다.’

2021년 1월 8일 밤 10시. 생방송이 한창이던 TBN 대전교통방송 심야 라디오에 심상치 않은 문자가 도착했다. 귀에 와서 꽂힌 건 비지스의 ‘홀리데이’. 너무 힘들고 ‘홀리데이’를 신청했다?

라디오를 진행하던 황금산 PD는 “문자를 보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신청곡인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과거 탈옥수 지강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개봉한 영화 ‘홀리데이’의 삽입곡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위험을 감지한 황 PD는 우선 ‘희망의 전화’에 연락했다. 그러고는 해당 곡을 신청한 청취자에게 30분 정도 여유를 두고 나중에 노래를 방송하겠다고 알렸다. 신청곡을 바로 띄우면 선택을 앞당길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어 경찰에 신고했다. 생방송 와중에 몇 분 만에 이뤄진 일들이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느냐는 묻자 황 PD는 “처음이었다”며 “그날은 왠지 사연이 신청곡과는 맞지 않으니까 걱정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확실한 건 코로나19 확산 이후에 받은 문자들을 보면 생활이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게 문자에 많이 반영됐다”고 덧붙였다.

해당 문자를 보낸 이는 평소 일상의 사연과 함께 신청곡을 종종 보내던 낯익은 청취자였다.

황 PD는 “밖에서 연출을 하고 있어서 그 문자 메시지를 자세하게 살펴볼 수가 있었다”며 “그래서 음악 선택도 미룰 수 있었고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렵더라도 사는 게 더 소중해…라디오가 위안이 되길”

‘제가 그릇된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반성합니다.
3일 만에 깨어나 보니까 교통방송에서 연락을 해줘서 저를 후송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생각을 좀 바꿔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반가운 문자가 도착했다. 그때 ‘홀리데이’를 신청한 청취자였다. 밝은 신청곡과 함께 다시 한번 라디오에 문자를 남긴 것이다.

황 PD는 “마음을 바꾼 것 같더라”며 “라디오라는 게 청취자들과 계속 소통하면서 그분들의 사연과 애환을 많이 듣다 보니까 청취자분들의 아픔이라든지 어려운 점 같은 걸 더 신경 써야겠다, 청취자분들께 우리 라디오가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냥 넘기지 않았다는 건데, 이제는 아무래도 더 열심히, 자세히 그분들 처지에서 봐야겠다”고 덧붙였다.

황 PD는 코로나19로 힘들어져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분이 생각을 바꾸고 나서 한 이야기 중에 어렵더라도 살아가는 게 더 소중한 것 같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다”며 “그런 것처럼 아무리 어렵더라도 용기를 내서 사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코로나가 극복되는 것처럼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고 전했다.

황금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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