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에게 미안하다면…” 그알 제작진이 제시한 분노의 방향

국민일보

“정인이에게 미안하다면…” 그알 제작진이 제시한 분노의 방향

입력 2021-01-24 07:30 수정 2021-01-24 10:04
그것이 알고 싶다 홈페이지 캡처

SBS 시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정인이 사건을 후속 보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방송에선 재발 방지를 위해 우리의 분노가 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 23일 오후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정인아 미안해, 그리고 우리의 분노가 가야 할 길’이라는 부제로 제2의 정인이를 만들지 않기 위한 대안을 찾았다. 제작진은 감당할 수 없으면서 왜 입양을 했는지, 양부는 정말 몰랐는지, 3번의 학대 신고가 있었는데 외면한 우리 사회가 또 다른 정인이를 구할 수 있을지 등의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섰다.

인터넷에 퍼진 주택청약 때문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해당 아파트가 청약 대상이 아닌 데다 투기과열지역이라 대출 규제가 심하다고 했다. 채권 최고액을 받더라도 다자녀 혜택은 없었다고 한다.

왜 입양을 한 걸까?

정인이 양모인 장모씨의 한 지인은 “장씨는 임신이 싫고 아이가 싫다고 했다. 다만 딸에게 같은 성별의 동생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첫째를 돌보는 것을 본 사람들은 반대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꿈이었다며 무슨 버킷리스트 채워가듯 그랬다”고 증언했다.

전문가들은 “정인이는 입양을 한 훌륭한 부부라는 찬사를 얻기 위한 소모품이었다. 헌신적이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삶을 산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그알’ 이동원 PD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정인이를 입양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비슷한 답변을 했다.

이 PD는 “직접 물어보고 싶은데 장씨가 구속상태라 물어볼 수가 없었다”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이야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카페 사장한테 듣기로 정인이 양모가 카페에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저희 아이 입양했어요’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사장님 입장에선 ‘안 물어봤는데 왜 입양 얘기를 하니’라고 생각했다는 얘길 들었다. 비슷한 에피소드를 3~4번 더 들었다”고 덧붙였다.

아빠는 정말 몰랐을까?

방임과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양부는 학대 사실을 몰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재판 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결혼 전부터 아내가 입양 얘기를 적극적으로 했다. 나는 포기하자고 했는데 아내가 용기를 북돋아 줬다”고 했다.

그는 또 “상황이 이렇게 되면 저희 첫째는 어떡하냐. 주변 사람들은 왜(학대 정황이 보였을 때) 나에게 그런 얘기를 안 해줬을까? 지금은 다 진술하면서”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안모씨 주장은 지인들의 증언과 상반된다.

한 지인은 “아빠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맘때 아이 지능지수가 강아지하고 비슷해 잘하면 상을 주고 못 하면 벌을 준다’며 8개월 된 아기가 우니까 안아주지 않고, 울음을 그쳤을 때 안아주더라”고 했다.

다른 지인도 “9월 카페에 간 적이 있는데 둘째는 없더라. 그래서 ‘정인이는 왜 없어’라고 했더니 ‘차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했다. 카페에서 한 시간 반 이상 머무르는 동안 한 번도(아이를) 찾지 않더라”고 했다.

또 다른 지인은 “차 안에서 엄마가 정인이한테 소리지르면서 화내는 걸 목격했는데, 애한테 영어로 막 소리 지르고 아빠는 첫째를 데리고 자리를 피한 거로 알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집 교사들의 증언도 양부 안씨가 몰랐다는 주장과 맞지 않는다. 사망 전날 아이를 데리러 온 안씨에게 아이의 심각한 몸 상태를 설명했다는 교사들은 양부가 정인이를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또 안씨는 정인이 사망 3일 전 양모와 함께 첫째만 데리고 미술학원을 방문해 수업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술학원 원장은 수업을 받는 동안 이들 부부가 정인이를 챙기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 한다.

제작진이 정인이 사망 타임라인을 추적한 결과, 양부가 정인이의 학대 사실을 알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인이가 사망하게 된 결정적 외상이 양부가 집에 있던 한글날 연휴에 생긴 것으로 제작진은 추정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양부를 아동학대 방임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방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인이를 살릴 기회는 없었을까?

세 번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다는 점에서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어린이집 교사,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등 관계 전문가들의 신고가 세 차례나 있었다. 그때마다 정인이는 번번이 집으로 돌아갔다. 학대는 입양한 지 한 달 뒤부터 시작됐다. 양부모는 입양기관을 방문한 다음 날부터 신체적 학대를 가했다. 양모의 학대 정황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영상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첫 번째 학대 의심 신고는 2020년 5월 25일 어린이집 교사들이 했다. 교사들은 3월 24일부터 정인이 몸에서 학대 흔적을 포착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병원 진료 기록과 부모의 설명이 달라 수사를 의뢰했으나 신고 20여일 뒤 내사 종결됐다. 경찰은 의심 정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1차 신고 이후 모니터링을 진행했다고 주장했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80회에 걸친 안전 모니터링 가운데 통화가 되지 않거나 문자만 발송하고 그친 게 대부분이었다. 직접 대면한 것은 극히 일부였다.

더 큰 문제는 2차 학대 신고 때였다. 2020년 6월 29일 정인이가 차량에 30분 이상 방치된 것을 본 한 시민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장소를 찾는 데에만 14일을 보냈고, CCTV를 확보하려 했지만 이미 삭제된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신고자는 “분명 정확한 장소를 말씀드렸는데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여기에다 신고자는 정인이의 양모가 신고자를 찾아내 무고죄로 고소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결국 이 신고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해당 기관은 전화가 연결되지 않거나 휴무라는 이유로 제대로 대응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법에 마련돼 있는데 경찰이 소극적이라 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건 제도를 활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주로 하는 업무가 부모들과의 상담이기 때문에 가해자와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기회였던 2020년 9월 23일 세 번째 학대 의심 신고 때에라도 정인이와 양모를 분리했다면 아이는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당시 신고를 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그해 7월에도 접종하러 왔는데 입안에 누가 작정하고 찢은 것처럼 상처가 있더라. 두 달 만에 왔는데 축나서 왔더라. 엄마한테서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1차 학대 신고 때부터 정인이를 지켜봐 왔다.

이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당시 경찰복을 입은 경찰들에게 엄마에게서 아이를 강력히 분리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아동전문보호기관에서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고 전했다. 해당 병원과 어린이집은 강서구 관할이었으며, 정인이의 집은 양천서 관할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12 신고를 받은 강서경찰서와 아동학대 수사에 나선 양천경찰서 사이 수사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인이를 계속 모니터링 했다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문제도 적지 않다. 3차 신고자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술했듯 제대로 된 추가 감시가 없었을뿐더러 신고 후 양부가 다른 소아청소년과를 찾아 구내염 진단을 받아 사건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기관 관계자는 “의사 소견에서 아동학대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분리 조치를 할 수 있는 요건이 아니었다”며 “양부모가 분리를 거부해 적극적으로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의심 정황은 입안 상처만이 아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1차 신고 때부터 지켜본 아이의 체중이 급격히 줄었다고 했다. 이에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상담원이 신고자와 통화로 신고 경위를 물었을 때 체중 외 다른 소견을 밝히지 않아 객관적 판단을 위해 다른 병원에 데려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고 후 처리 과정도 문제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경찰에 아동과 부모를 분리 조치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었다. 당시 출동한 경찰관들은 어린이집과 소아청소년과의 관할서인 강서경찰서 지구대 대원들이었다. 사건 접수 후 정인이의 집 관할인 양천경찰서로 이관됐다.

제작진은 양천경찰서 측에 ‘지구대 대원들이 3차 신고자가 주장한 분리 조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느냐’고 물었지만 관계자는 답변을 거부했다.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긴급하게 분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3차 신고자는 “나에게 이야기를 들은 경찰과 서류상으로 보는 이들의 느낌은 달랐을 것”이라며 “직접 이야기를 들은 이가 계속 수사했다면 제대로 수사가 진행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아쉬워했다.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제2의 정인이는 없어질까?

사건 이후 국회에선 관련 법안이 쏟아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종합적 대책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력과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동학대는 아동과 부모의 분리가 끝이 아니라 시작인 만큼 아이를 치료하고 부모를 처벌하며 교육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이 없어 정인이 사건이 발생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 전문가는 “법적 근거가 없어 문제이니 법을 만들었다고 하면 대부분 환영하고 안심하고 지나갈 것이다. 쉬운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7년 전 비슷한 사례인 ‘이서현 보고서’가 이미 존재하고 이번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법안 통과보다 근본적 시스템 개선을 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방송은 마지막으로 정인이 이름은 정인이를 위해서만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정인이를 구하는 데에만 이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학대 사실을 알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알린 아이의 얼굴과 이름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지켜주는 일이라고 당부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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