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하라” 피해자 장혜영 향한 대중의 요구는 정당한가

국민일보

“고소하라” 피해자 장혜영 향한 대중의 요구는 정당한가

전문가 “일상 회복 어려운 성폭력 사건, 피해자 회복 최우선”
가해자 단죄 중요하지만…“고발 통해 얻으려는 게 무엇인가” 생각할 필요

입력 2021-01-29 00:05 수정 2021-01-29 00:05
김종철 정의당 전 대표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공동사진취재단.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은 새로운 논란을 촉발했다. 정의당과 피해자인 장혜원 의원이 김 전 대표에 대한 형사처벌 절차를 밟지 않겠다고 한 가운데 한 시민단체가 김 전 대표를 경찰에 고발하면서다.

피해자인 장 의원은 “원치 않는 고발로 인해 2차 가해를 감당해야 하느냐”며 반발했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반면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고소해야 하는 범죄) 조항이 폐지된 상황에서 피해자가 원치 않더라도 성폭력 범죄를 행한 가해자 처벌은 정의를 위해 필요하다며 정의당의 처사를 비판하는 반론도 팽팽하다.

논란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이번 정의당의 사건 처리 과정을 유심히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피해자인 장 의원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정의당)에 문제를 고발했고, 그 공동체는 즉각 조사를 거쳐 그 결과를 발표했다. 장 의원은 스스로 피해자임을 공개했고, 가해자인 김 전 대표는 공개 사과하며 대표직을 내려놨다. 과거 여러 ‘미투(MeToo)’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안전하게 공론화할 수단이 없거나 유명무실해, 외부단체나 언론 등의 힘을 빌려 ‘폭로’의 형태로 알렸던 것과 모든 부분이 달랐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해결되지 않을 때 이뤄지는 형사 고발은 불필요했고,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공개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사건 당시 ‘무슨 행위가 있었는지’ 따로 언급될 여지도 없었다.

성폭력 사건을 다뤄온 전문가들은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국민일보는 28일 성폭력 사건을 다뤄온 법률·현장 전문가 5명으로부터 친고죄 폐지 상황에서의 가해자 처벌 절차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의 의미, 이번 정의당의 처리 방식에 대한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들어봤다.

피해자는 반드시 가해자 처벌을 원해야 하나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는 “성폭력 범죄처럼 개인의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과 곧바로 직결되는 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하려 할 때는 특히 그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 피해자 본인의 판단과 결정이 최우선으로 존중되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성향과 생각, 태도가 다르듯 피해자 역시 다양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별한 외압이나 회유가 없어도 문제 제기를 원치 않거나, 문제 제기는 하더라도 형사 처벌은 원치 않고 진정어린 사과만 받기 원하는 경우, 형사 처벌을 원하되 여러 이유로 수사기관에 나가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는 경우, 형사 처벌을 원하며 피해 진술을 어떻게든 끝까지 계속할 의지가 강한 경우 등까지 피해자의 성향과 생각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그러면서 “피해자가 수사 과정 등에서 본인이 원치 않는 진술을 계속해야 하는 부담감과 같은 심리적 압박감도 성폭력 범죄로 인해 생기는 피해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 제 24조에 ‘피해자 등의 의사 존중’ 원칙을 명문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24조는 상담소, 보호시설 및 통합지원센터의 장과 종사자들이 피해자 등이 분명히 밝힌 의사에 반하여 성폭력 피해 신고 접수를 하거나 성폭력 행위자에 대한 고소 등 사법처리절차 등을 밟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의 박아름 운동가도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 해결의 방향이나 방법은 다 다르다. 장 의원 역시 본인이 원하는 방법이 공동체적 해결방법이라고 말한 것이고, 그것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법적 처벌을 원하는 분들도 어쨌든 정의롭게 성폭력이 해결되길 원하는 마음이리라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모든 피해자가 사법적인 처벌을 원해야 한다거나 고소를 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다. 제3자가 고발하더라도 결국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를 원치 않으면 고통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의당 장혜영 혁신위원장. 연합뉴스.

‘친고죄 폐지’ 취지도 결국 ‘피해자 보호’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이 폐지된 것도 ‘피해자 보호’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박 변호사는 “친고죄가 폐지된 근본적 취지도 피해자에 대한 최대한의 보호에 있다는 것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친고죄가 폐지된 지금도 피해자 의사에 대한 우선 존중의 원칙은 다른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준수되어야 할 필요가 크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의사를 존중한다는 것이 친고죄가 폐지된 현행법 체계에 역행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 상담소 최원진 사무국장은 “친고죄 폐지의 의미는 성폭력을 사실상 개인 사이의 일, 민사적인 일로 봤던 것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인식이 바뀐 데 있다”고 설명했다. 각 사건에서 가해자나 범행 유형, 처한 상황 등에 따라 원하는 처벌의 방식이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이 친고죄 폐지 의미에 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공인인 가해자, ‘응당한 처벌’도 중요한데…
물론 가해자에 대한 응당한 처벌의 필요성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가해자인 김 전 대표가 공당의 대표인 공인이라는 점에서 달리 볼 부분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를 맡고 있는 서혜진 변호사는 “김 전 대표와 장 의원은 공인 중의 공인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직에 있는 여성 피해자에게 우리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현직 국회의원인 장 의원의 행동과 선택이 많은 여성 피해자들에게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관여하지 말라’는 건 상당히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직 국회의원 피해자와 현직 정당 대표 가해자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 브리핑을 통해 공개됐는데 ‘공동체적으로 해결한다’는 식의 발언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서 이사는 이어 “이미 고발이 된 상황이니 그에 대한 불만을 SNS에 올릴 게 아니라 정식 수사 착수가 되면 피해자로서 ’나는 사건 처벌을 원치 않고 진술하지 않겠다’라고 공식적으로 해주는 게 맞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 경우조차 피해자에게 사회적 요구나 공익 실현을 이유로 나서게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데 전문가들의 이견은 없었다.

성폭력 사건을 주로 맡아온 이은의 변호사(이은의 법률사무소)는 “원칙적으로야 당연히 잘못한 게 있으면 처벌해야 하니 피해자도 한발 나서서 이에 협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바란다고 피해자에게 거기까지 나서라는 것 또한 폭력적”이라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공익 실현까지 책임지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대신 “고발을 받은 수사 기관이 고민할 것은 피해자 진술 없이도 처벌하거나 기소할 여지가 있는 행위인지, 다른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를 점검하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서 이사도 “성폭력 사건에서 기본적으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줘야 하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원칙이다. (성범죄가) 친고죄가 아니어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거나 하는 것은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전제했다.

박 변호사는 “성폭력 사안의 해결에 있어서 피해자가 이미 발생한 피해로부터 빨리 벗어나 피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가치이자 원칙”이라고 말했다.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더 큰 상처에 빠진다면 결코 진정한 문제 해결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쟁화는 안 돼…‘피해자 자리’ 사라진다”
정의당 김윤기 당대표 직무대행, 이은주, 배진교, 류호정 의원 등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략협의회에서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 정당인 정의당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에 대한 실망감과는 별개로 그 사건을 다룬 과정과 대응 방식은 의미있게 볼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최 사무국장은 “진보와 보수 구도 안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이게 약점이 돼 공격 대상이 되고, 그렇다 보니 이를 최대한 감추는 식으로 반복돼왔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자리는 없고 도구로 쓰일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의 해결 방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정의당이 이번 사건을 처리하면서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방법을 고민했다는 점, 피해사실을 적나라하게 적시하지 않은 점 등이 우리에게도 새롭게 보이는 면이 있다”면서 “형사법적 처벌이 끝인 것 같지만 이런 과정을 돌아보지 않으면 제2, 제3의 사건은 또 나온다. 그래서 이런 대응 방식과 변화를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송다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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