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소주에 번개탄? 촉이 발동했습니다”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소주에 번개탄? 촉이 발동했습니다”

입력 2021-03-04 16:09
연합뉴스

“소주 2병과 번개탄을 사간 손님이 있는데 느낌이 이상해요.”

지난달 28일 오후 4시45분쯤 전북경찰청 112 치안종합상황실에 이 같은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신고자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A씨(57)였습니다. A씨는 20여 분 전 마트를 다녀간 한 여자 손님에게서 느껴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 손님은 푹 눌러쓴 모자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상태로 번개탄 하나와 소주 두 병, 라이터 한 개, 과자 두 봉지를 골라 계산대 앞에 서 있었습니다.

“고기 구워 드시려구요?” 힘 없이 서 있는 듯한 그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초간 침묵을 지키던 손님은 “번개탄 하나로는 모자라려나요”라고 묻더니 번개탄을 하나 더 꺼내 계산대로 가져 왔다고 합니다. A씨는 마지못해 계산은 했지만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직감했습니다. 걱정스런 마음은 A씨를 움직였습니다. 계산을 하고 나간 손님을 따라나간 A씨는 그가 타고 떠난 차량 번호까지 메모했습니다.

혹여라도 자신이 과민했던 거라면, 그래서 경찰관이 헛걸음을 하는 거면 어떡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A씨는 가족들과 의논한 끝에 112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A씨가 건넨 차량번호로 경찰이 위치를 추적해 찾은 50대 여성은 부안군 부안읍의 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쁜 마음을 먹고 광주에서 뚜렷한 목적지 없이 어디론가 이동하는 중이었죠. 현장으로 달려간 경찰은 그의 차량을 세운 뒤 설득해 인근 파출소로 데려가 안정을 취하게 했습니다. 늦은 밤 경찰의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온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순간, 손님의 작은 행동과 말에서 불안한 느낌을 감지해 낸 마트 주인의 눈썰미는 소중한 생명을 구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느낌에 멈추지 않고 행동했습니다.

차이를 만든 건 대단한 눈썰미가 아니라 작은 관심일 겁니다. 지금 이순간 우리 주위에도 힘들고 지친 이가 지나치고 있을지 모릅니다. 바쁘고 각박한 요즘이지만, 잠시 잠깐 따뜻한 시선과 말 한마디 건네보면 어떨까요.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양재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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