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막차, 난 바본가” “일 왜 해, LH 입사하지” 청년들 분노

국민일보

“영끌 막차, 난 바본가” “일 왜 해, LH 입사하지” 청년들 분노

입력 2021-03-07 16:11

경기도 시흥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매일 광역버스와 지옥철을 갈아타며 2시간여 출퇴근하는 서모(31)씨는 최근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이 터지면서 청약 신청 자격을 갖추려고 들였던 그간의 노력이 덧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씨는 7일 “시흥에서 살아온 덕분에 광명시흥지구 3기 신도시 청약이 열리면 당첨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서울 자취도 포기했었다”고 말했다. 청약 기회를 얻으려고 부족한 월급에서 쌈짓돈을 떼어 매달 주택청약통장에 차곡차곡 보태왔던 그였다. 서씨는 “하지만 LH 직원들처럼 새치기와 각종 꼼수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앞에 계속 등장하니 내 집은 언제 마련할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LH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자 2030세대에서 또다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역민 청약 당첨을 노리던 사회초년생부터 빚을 내 가까스로 집을 마련한 신혼부부까지 한목소리로 부동산 정책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말 결혼식을 올린 새신랑 A씨(33)는 지난해 여름 고심 끝에 ‘영끌(빚을 내어 집 구매)’ 막차를 타 서울에 작은 신혼집을 장만했다. 하지만 아직도 막대한 대출 금액을 떠올리면 막막함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A씨는 “LH 사태를 보니 스스로 노력해 집을 마련한 나 자신이 대견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바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 정책까지 서민에게 박탈감을 주는 식이라니 그저 실망스럽기만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는 LH 사태를 두고 웃지 못할 농담마저 오간다고 한다. 한 유통기업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최모(29·여)씨는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끼리 우스갯소리로 ‘진작에 LH에 입사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냐’는 핀잔을 줬다”며 “정부가 만약 LH 직원들의 범죄 혐의 입증에 실패해 재산 환수에 실패한다면 앞으로 LH 입사 경쟁률은 삼성전자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고 씁쓸해했다.

정부가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을 두고도 전형적인 여론 무마용이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직장인 박모(35)씨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이전의 땅 투기 사례까지 가정하면 정부의 대책 마련은 상당한 뒷북”이라고 지적했다. 호소문에 ‘무관용 원칙’ ‘도려낸다’는 등 과격한 표현을 앞세운 것도 강한 기시감이 든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그는 “당장이라도 LH에 강력한 처벌을 내릴 수 있을 것처럼 정부가 엄포를 두는 듯 하지만 막상 전수 조사에 들어가면 대상이나 범위가 워낙 방대해 제대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힐난했다.

취업준비생 김모(28)씨는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다시 한 번 제기했다. 김씨는 “이번 정부 들어 사법부나 수사기관, 언론 등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이제는 누가 개혁 집행자고 개혁 대상자인지 구별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국토부 장관마저 LH 임직원을 두둔하는 듯한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것을 보니 정부의 서민 주거 대책 구호 역시 전부 허상일 수도 있겠다는 절망감마저 든다”고 비판했다.

최지웅 황윤태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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