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어야만 용서” 숨진 동생 카톡에 남편 학대 흔적

국민일보

“무릎 꿇어야만 용서” 숨진 동생 카톡에 남편 학대 흔적

입력 2021-09-09 13:25 수정 2021-09-09 14:41
유족이 공개한 고인과 남편 C씨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7월 극단적 선택을 한 여성이 생전에 남편으로부터 정신적·육체적 학대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족은 고인과 남편이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가스라이팅(gaslighting) 범죄를 주장하며 처벌을 요구했다.

사망한 여성 A씨의 언니 B씨는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두 사람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B씨는 8일 고소장과 동생의 병원 진료 기록 등을 공개하며 “오늘 경찰 진술 조사를 다녀왔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피해를 증명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과연 처벌은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한번 들끓고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숨진 동생의 남편 C씨를 향해 “아직도 억울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며 “사망신고 후 문자 한 통 받은 것 외에는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잘못을 구할 시간은 충분히 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언니 B씨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동생은 지난해 직업군인 C씨와 결혼을 했다. C씨가 신혼집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처가에 돈을 요구했고, 급기야 장모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장모가 방어하던 중 C씨에게 손톱으로 상처를 만들었고, C씨는 폭행죄로 고소하겠다며 현금 5000만원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C씨의 언어 폭행이 더욱 심해졌고, 결국 A씨는 지난 7월 28일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B씨는 C씨가 장례식 내내 극도로 불안해하고,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껴 동생의 휴대전화를 살펴봤고, 동생이 지속해서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족이 공개한 고인과 남편 C씨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인스타그램 캡처

유족이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C씨는 평소 A씨에게 “모두 네 잘못이야”, “제대로 사과해”, “나니까 참고 사는 거야”, “이혼해” 등의 발언을 했다.

C씨는 A씨에게 여러 차례 돈을 요구했고, 입금이 늦어지면 “XX 진짜, 위기 상황이라고. 너 같은 사람 필요 없어”, “꺼져, 이혼할 거야. 이기적인 X” 등의 폭언을 쏟아냈다.

또 B씨는 답장이 늦다는 이유로 “XX 진짜 살다 살다 너 같은 XXX은 처음 본다”, “너 같은 X은 너랑 똑같은 사람이랑 살아야 해”라고 쏘아붙였다.

이 밖에도 “너는 진짜 별로야. 내가 너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감도 안 잡혀?”, “자존심 버리고 사과해” 등 A씨의 자존감을 깎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밥 먹지 말고 시킨 것부터 해. 뭐 잘했다고 밥을 먹어”, “내일 친구들 만나지 마. 몸 아프다고 말해”라며 A씨의 행동과 교우 관계를 통제했다.

유족이 공개한 고인과 남편 C씨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인스타그램 캡처

A씨는 남편의 폭언에 지쳐 “무릎 꿇고 빌고 그 모습을 봐야만 용서가 되는 거냐”, “빌고 울어도 안 받아줄 거면서 왜 자꾸 기회란 단어를 쓰는 거냐”며 힘들어했다.

언니 B씨는 “싸움에 지친 동생은 결국 본인의 잘못이 없어도 사과를 하게 됐다”며 “건강했던 동생은 C씨를 만난 뒤 부인과 진료를 수차례 다니고 골골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올리지 못한 혐오스러운 내용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B씨는 지난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런 내용의 청원을 올려 C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가스라이팅 및 가정폭력으로 제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부사관의 처벌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청원은 9일 오후 1시 기준 2만50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정서적 학대를 의미한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서서히 자신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우울과 좌절에 빠지게 된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정신적으로 병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가족, 연인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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