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깜깜이, 경찰은 생중계”…말로만 무죄추정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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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깜깜이, 경찰은 생중계”…말로만 무죄추정 [이슈&탐사]

[누구를 위한 범죄공개 금지인가] ⑥ 검경 다른 공개 규정

입력 2021-10-04 06:02

지난해 6월 경남 창녕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은 잔인한 범행 수법이 공분을 일으켰다. 의붓아버지와 친어머니가 초등학생 딸을 쇠막대기로 때리고 프라이팬으로 지지는 등 상습적으로 학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은 언론 브리핑에서 친어머니 정신 병력까지 공개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범행 동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과도한 개인정보 공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경찰의 원칙 없는 수사정보 공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찰이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민감한 수사 상황은 사실상 생중계됐다.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정부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정부는 검찰개혁 일환으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2019년 말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피의자 등 사건 관계자 인권을 보호하고 무죄추정 원칙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했지만 경찰 수사 단계에선 이 규정을 적용하지 못한 탓이다.

현재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피의사실 공표 관련 제한 규정은 없다. 공정한 범죄공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검찰과 경찰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규정이나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다. 검찰에선 공인 범죄까지 공개를 지나치게 금지해 국민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가운데 경찰에선 관행적인 수사 정보 유출이 문제라는 우려가 크다.

줄줄 샌 강력범죄 정보
경찰은 그동안 주로 강력 범죄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사 상황이나 사건 관련 인물의 개인 정보를 여과 없이 공개한 사례가 많았다. 국민 분노를 일으킨 강력 범죄 피의자에 대한 정보 공개는 일정 수준 허용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9월 창녕 아동학대 사건 당시 경찰 브리핑과 관련해 “경찰이 민감한 정보를 임의로 공개한 것에 대한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개인의 민감한 정보인 정신 병력을 유출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면서 “검찰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와 유사한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감한 수사 정보 공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별도의 심사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도 경찰의 수사 정보 유출 문제는 해소되지 못했다. 피의사실 유출 논란의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3월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 관련 수사 정보 공개였다. 당시 ‘구미 경찰서에 따르면 아동의 친모인 석모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거짓 반응이 나왔다’는 등 경찰 수사 상황이 사실상 생중계된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석씨와 피해 아동의 친자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검사 결과까지 유출됐다.


한창 수사 진행 중인 사건의 피의자 진술이나 증거 내용도 여과 없이 공개됐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 4월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수사와 관련해 범행 동기를 공개하면서 “피해자가 연락을 차단하고 만나주지 않아 그 이유를 알고 싶고 화가 나고 배신감을 느낀 것”이라며 경찰 조사 과정에서 나온 피의자 김태현의 진술을 공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3월 “LH직원의 자택 압수수색에서 토지개발 관련 지도를 압수했다”며 구체적인 증거 내용을 직접 공개했다.

“검찰은 입 닫았는데…”
경찰은 피의사실 유출 문제와 관련한 현실적인 대책을 여전히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범죄정보 공개에 관한 경찰청 훈령인 ‘경찰 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은 ‘사건 관계인의 명예, 신용, 사생활의 비밀 등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내용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관련 법령과 규칙에 따라 공개가 허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의사실, 수사사항 등을 공개해선 안 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규칙을 어겼을 경우에 대한 제재 또는 견제 장치는 없다.

앞서 법무부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면서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검찰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가 도입돼 피의사실의 예외적 공개 행위 또한 심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이 규정은 법무부 훈령으로, 경찰에는 적용할 수 없다. 검찰과 다른 행정조직에 속한 경찰은 경찰청 훈령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런 이유로 각 수사기관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피의사실 유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의 서로 다른 범죄정보 공개 규정에 관해 “경찰은 현재의 규칙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며 “경찰 규칙이 특별히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의사실 유출을 최소화해야 할 경찰 수사 단계에서 오히려 피의사실 유출이 더 많아질 수 있는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경찰의 수사 범위가 더 넓어진 만큼 경찰의 피의사실 유출 문제에 관한 감시 또한 더 커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확대됐고, 검찰 수사는 6대 중요 범죄 등으로 제한됐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입은 막고 경찰의 입은 열게 하는 것은 인권 보호라는 본래 (형사사건 공개금지의)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검찰이 수사하는 6대 범죄에 해당하는 내용은 국민 알권리가 우선되는 사항일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이 다루는 일반 범죄 대부분은 피의자 등의 인권을 더 보호해야 하는 사건들”이라고 지적했다.

“검경 통일된 기준 마련해야”
검찰과 경찰 각 수사기관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3일 범죄정보 공개 규정과 관련해 “법무부 훈령이 아니라 법률로 (각 수사기관에 적용할 수 있는) 통일된 기준을 정해야 한다”며 “범죄 정보공개 범위를 현행보다 확대하고 간혹 있을 수 있는 인권 침해 요소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맞는다”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피의자 등 사건 관계자 인권이나 사생활 보호, 무죄추정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인 범죄에 대해서는 국민 알권리를 우선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과 경찰이 공통된 (범죄공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공인 범죄의 경우 극도의 사생활 침해나 국가 안보에 위해가 되는 사안이 아니라면 국민들이 자세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인 범죄 관련 알권리 보장은 판례를 통해 이미 근거가 뒷받침된 권리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 사건 판례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씨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과정에서 자신이 돈을 받았다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에서 일부 승소했던 노씨는 2심에서 패소했다. 노씨가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이를 각하하면서 패소가 확정됐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씨의) 지위, 피의사실 내용과 중대성, 국민들의 관심 정도, 반론 가능성 등에 비춰 보면, 개인적 명예와 인격권을 보호할 필요성이 국민의 알권리에 비해 더 크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공인에 대한 청탁이 있었는지, 그 청탁에 대한 대가가 수수됐는지 여부 등에 관한 것으로서 공공성 있는 내용”이라고 판시했다. 공인이 연루된 범죄 사건 경우엔 국민 알권리가 다른 권리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적 인물은 언제든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하며 이들에 대해서는 (형사사건 관련) 공개 범위를 확대해도 된다”고 말했다.

문동성 구자창 박세원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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