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과 공정성… 해외 전문가들의 ‘범죄공개’ 키워드 [이슈&탐사]

국민일보

일관성과 공정성… 해외 전문가들의 ‘범죄공개’ 키워드 [이슈&탐사]

[누구를 위한 범죄공개 금지인가] ⑦ 어디에도 없는 금지

입력 2021-10-06 07:15 수정 2021-10-06 11:47
국민일보가 취재한 한국 범죄정보 공개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그때그때 달라지는 사건 공개 여부 및 공개 범위였다. 이는 2019년 말 추진된 검찰개혁에 따른 결과였다. 정부는 사실상 사문화됐던 피의사실 공표죄를 강조하면서 검찰의 형사사건 정보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공적 인물에 관한 공소장 공개까지 제한했다. 인권을 보호하고 무죄추정 원칙을 지킨다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시행 2년 만에 공인 범죄와 관련한 국민 알권리를 상당히 위축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에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못한 성급한 제도 도입의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스티븐 멀로이 미국 멤피스대 법학과 교수, 미도리 다이스케 히토쓰바시대 법학과 교수, 마르크 죌러 독일 뮌헨대 법학과 교수, 리사 웨블리 영국 버밍엄대 로스쿨 학장(왼쪽부터).

취재팀은 지난 8월부터 10여차례 이메일과 화상 인터뷰를 통해 해외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한국의 범죄공개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지 짚어보고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인터뷰에 응한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법학자 9명의 공통된 의견은 사건 공개 기준과 절차에 일관성과 공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사건 공개 결정은 투명한 기준에 따라 독립 기관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자의적·선별적으로 범죄정보를 숨기거나 공개할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미국 교수 “문제는 한국 법무부·검찰 재량권”
연방검사 출신인 스티븐 멀로이 미국 멤피스대 법학과 교수는 형사사건 공개 여부를 법무부·검찰에서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한국의 규정과 관련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재량권(discretion)”이라고 말했다. 멀로이 교수는 “정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한다는 게 우리 사법 체계의 전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투명한 정보 공개를 위해선 수사를 담당한 기관이 범죄정보 공개 여부를 좌지우지해선 안 된다는 의미였다.


형사사건 공개 여부는 투명하고 독립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멀로이 교수는 “기소 결정이 내려진 뒤부터는 투명성에 초점을 둬야 한다. 특히 사건 공개 여부는 검찰과 전혀 관계없는 독립된 판사나 기관에 의해 정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멀로이 교수는 “공소장이 비공개 처리되는 경우는 법원이 예외적으로 허락할 경우”라며 “공소장은 미성년자 사건 등을 제외하고는 법원에 제출된 시점부터 공개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 법무부 관계자가 “미국에선 공소장 비공개가 원칙이고 공개가 예외”라고 했던 설명과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공소장 공개 여부는 특히 국민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멀로이 교수는 “미국에서 공소장은 공문서(public document)이며, (법원에) 제출한 시점부터 모두에게 공개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서는 법원 서류를 검색하듯 공소장도 원문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멀로이 교수는 “국민이 기소 내용을 알아야 사법제도가 공정하게 운영되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법 감정”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 검사들의 정보 공개가 한정돼 있다’는 사례로 언급했던 미국 법무부 매뉴얼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멀로이 교수는 “미 법무부 매뉴얼의 핵심은 공소장처럼 공개가 결정된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검찰 조사가 끝나고 기소 준비가 된 시점부터는 관련 내용을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적절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런 공개는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일본 전문가 “특정사건 비공개는 매우 독특”
일본 전문가들은 한국의 형사사건 공개 규정이 독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부스키 마코토 일본 세이조대 법학과 교수는 이 규정으로 인해 수사 중인 사건이 비공개 될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이는 일본 학자들이 봤을 때 매우 독특해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범죄정보 공개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의미였다.


일본 법학자들에 따르면 일본 검찰이 언론에 형사사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소장과 관련한 보도 원칙이나 규정도 없다. 공소장은 첫 공판 때 공개되는데 그 이전에 언론이 공소장 내용을 보도해도 문제 삼기 어렵다고 한다. 이부스키 교수는 “일본에는 공소장 비공개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며 “검찰이 의무적으로 공소장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언론에 관련 내용을 알리는 게 금지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도리 다이스케 히토쓰바시대 법학과 교수는 “언론이 검사를 취재해 비공식적으로 공소사실을 보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부스키 교수는 “검찰청과 경찰청에는 수사기밀을 지키기 위한 윤리 강령은 있지만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나 법은 없다”고 부연했다. 오타 타츠야 게이오대 법학과 교수도 “기소 전 수사 단계의 정보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했다.

일본에는 피의사실 공표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 형법 제230조 ‘명예훼손죄’가 규정돼 있지만 공익을 위한 사건 공개에는 이를 적용할 수 없다. 미도리 교수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실이며 공익을 도모했다고 인정되거나 보도 내용이 진실하다고 증명되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도리 교수는 “보도 내용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자료, 근거에 비춰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판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도리 교수는 일본의 비교적 폭넓은 범죄정보 공개와 관련해 “공판 전 보도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며 “최선의 보도 방식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독일 교수 “공개 여부는 독립기관이 결정해야”
마르크 죌러 독일 뮌헨대 법학과 교수는 한국의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과 관련해 “사건 공개를 거부하는 결정은 확실하고 투명한 기준에 근거해야 하며, 독립 기관에 의해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 공개 여부의 키를 사실상 법무부나 검찰이 쥐고 있는 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다.


죌러 교수는 “사건 정보를 비공개하는 결정은 오직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범죄정보 공개 제도에 관해선 “우리는 그런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며 “독일 헌법은 특히 언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건 정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시스템을 가장 확실하게 금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보 공개 범위를 결정하려면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샤 지만 라이프니츠 하노버대 법학과 교수는 “한 부처가 정보 공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사건 공개는 민감한 사안으로 다양한 이해 당사자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법적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공판 이전에 공소장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하는 것은 형법(제353조d)에 따라 처벌할 수 있지만, 실제 처벌 사례는 드물다. 죌러 교수는 “제353조d의 실질적 의미는 매우 낮다”면서 “(공소장 내용을) 요약해 보도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독일 검찰의 ‘형사절차 및 질서위반금 절차에 관한 지침’(RiStBV)은 ‘피고인에게 (사건 정보가) 전달된 뒤이거나 사건이 이미 알려진 경우에만 기소 내용과 혐의 내용을 국민에게 알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건 공개가 첫 공판 이후로 미뤄진 것은 아니다. 죌러 교수는 “공소장은 공판 전까지 원칙적으로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지만 언론의 자유를 위해 보도가 어느 정도 허용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지만 교수도 “정부 당국은 언론의 공익성을 존중해 일정 수준의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베른트 홀츠나겔 뮌스터대 법학과 교수는 “소년법원 사건이나 일부 성범죄 사건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비공개한다”고 설명했다.

영국 로스쿨 학장 “편향적 공개 결정은 안 돼”
리사 웨블리 영국 버밍엄대 로스쿨 학장은 형사사건 공개 여부를 심의하는 한국의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에 관한 질문에 “일관성과 공정성이 있는 시스템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비공개할 수 있는 규정에는 문제가 있다는 취지였다.


웨블리 학장은 “영국에는 사건 공개 여부를 심의하는 위원회가 없다. 그런 시스템이 없다”면서 “심의위가 별도 기관의 감독을 받는지, 편향적인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지 등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에릭 바렌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미디어법학과 명예교수도 한국의 범죄공개 금지 규정에 대해 “정부 부처가 통제권(control)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웨블리 학장은 또 “공개 여부의 이유 중 하나가 평판 훼손(reputational damage)이라면,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여러 사항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에서는 (사건을 비공개할 경우)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한다거나 수치심이나 평판, 재정적 피해와 같은 이유를 들지는 않는다”며 “이런 이유로 사건을 비공개할 수 있는 절차가 없다”고 설명했다. 명예훼손 여부 등을 과도하게 따져 공익에 부합하는 사건 공개를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영국에선 첫 공판 이후부터 기소 내용에 관한 구체적인 보도를 상당히 자유롭게 허용한다. 진행 중인 사법 절차를 방해하거나 유무죄 등에 대한 예단을 하도록 하는 상당한 위험이 있는 보도에 대해서만 법원모독죄(Contempt of Court Act)로 처벌할 수 있다. 웨블리 학장은 “기소 후 피고인의 법정 답변에서 모든 사건의 기본 정보가 공개되며 이에 대한 간략한 보도는 첫 공판 전부터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첫 공판 후에는 개방적인 사법체계로 전환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바렌트 교수도 “일반 국민이 공소장을 포함한 모든 법원 문서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박세원 김경택 구자창 문동성 기자 o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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