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카우터가 밝히는 ‘도피쵸룰리’ 비하인드

국민일보

젠카우터가 밝히는 ‘도피쵸룰리’ 비하인드

젠지 손창식 스카우트 전화 인터뷰

입력 2021-12-03 18:15 수정 2021-12-03 21:21
젠지 손창식 스카우트. 젠지 제공

젠지가 2021년 스토브리그의 승자가 됐다. ‘도란’ 최현준, ‘쵸비’ 정지훈, ‘리헨즈’ 손시우를 자유 계약(FA) 신분으로 영입하고, 농심 레드포스에 ‘비디디’ 곽보성을 내주는 대가로 ‘피넛’ 한왕호를 받아왔다. 프랜차이즈 스타 ‘룰러’ 박재혁과 함께 새로운 슈퍼 팀을 꾸렸다.

정지훈은 이번 이적 시장의 최대어였다. 젠지는 어떻게 정지훈의 마음을 사로잡고, 대권 도전을 노릴 만한 로스터를 만들었을까. 지난 2일 젠지 손창식 스카우트를 전화로 인터뷰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젠지가 올해 스토브리그의 승자로 떠올랐다. 언제부터 영입 전략을 준비했나.
“선수 스카우팅은 팀의 2021년 성적과 별개로 내가 늘 해야 하는 일이다. 첫 번째 영입 리스트는 7월경 작성했고, 총 3개의 플랜을 짰다. 정지훈 중심의 팀이 플랜A, ‘쇼메이커’ 허수 중심의 팀이 플랜B, 곽보성 중심의 팀이 플랜C였다.
아놀드 허 한국 지사장이 ‘딱 1명만 영입할 수 있다면 누굴 원하는가’ 물어보더라. 이미 팀에 곽보성이란 걸출한 미드라이너가 있었고, 허수와 ‘캐니언’ 김건부라는 역대급 듀오가 계약 만료를 앞둔 상황이었지만 고민 끝에 정지훈을 영입하고 싶다고 답했다.”

-정지훈 외에 어떤 선수들이 플랜A로 고려됐나.
“이적 시장 개막이 약 2주가량 남았을 때까지도 나는 정지훈의 파트너로 누가 적합할지를 고민했다. 팀에서는 김건부를 가장 적합한 선수로 여겼다. 나는 아니라고 봤다. 국내 기준으론 한왕호, 해외 기준으론 ‘타잔’ 이승용이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될 거로 판단했다. 두 선수 모두 FA 대상이 아니므로 영입할 자금을 마련해달라고 팀에 요청했다.
나는 정글러와 서포터가 한 몸이라고 본다. 한왕호와 ‘라이프’ 김정민은 2019년에 한 차례 아쉬운 결과를 낸 적이 있다. 그래서 만약 한왕호를 영입한다면, 그와 함께 능동적으로 움직일 서포터도 필요하다고 봤다. 탑은 처음부터 최현준을 원했다. 한왕호, 정지훈, 손시우를 영입하는 것. 이게 우리의 플랜A였고, 결과적으로 그대로 이뤄냈다.”

-‘너구리’ 장하권이 아닌 최현준을 우선 영입 대상으로 삼은 이유가 있나.
“허 지사장의 의사를 반영했다. ‘팀 하나를 통째로 사는 건 매력이 없다. 우리는 스토리가 있는 팀을 원한다’고 하더라. 나는 장하권이 친정팀인 담원 기아로 복귀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젠지가 담원 기아한테 지기만 한 게 사실 아닌가. 담원 기아를 깨부수는 스토리를 쓸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었다. 최현준이 최적의 멤버라고 판단했다.”

-올해 부진했던 손시우를 우선 영입 대상으로 삼은 것도 의외다.
“신인 중 메카닉(피지컬)이 좋은 선수는 많다. 반면 판을 읽는 눈이나, 브리핑 능력이 좋은 선수는 많지 않다. 그래서 그 부분에 강점이 있는 손시우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많은 관계자에게 자문했다. 다들 ‘손시우는 강팀에서 더 잘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평가하더라. 친분이 있는 박재혁과도 건강한 의견 다툼을 할 수 있을 거로 보고 있다.”

-이적 시장은 16일 오전 9시에 시작됐다. 어떻게 움직였나.
“이지훈 단장과 허 지사장이 ‘막타’를 칠 수 있게 세팅해놓는 게 내 역할이다. 축구에 빗대면 두 공격수를 향해 골문 앞 스루패스를 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머 시즌부터 미리 나만의 비밀 노트를 준비하고, 영입 대상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적어놨다. 취재원들을 통해 전해 들은 개개인의 취향, 기호, 성격 등 아주 사소한 것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16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앞으로 내가 할 말들을 전부 시뮬레이션해봤다. 오전 9시가 되기 10분 전, 한화생명e스포츠 관계자에게 정지훈의 FA 전환 유무를 재차 물어봤다. 9시가 되자마자 최현준, 정지훈, 손시우 순으로 전화를 걸어 미팅을 잡았다. 이 단장과 미리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해봤던 문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읊었다.
오후 1시에 여의도 모처에서 최현준과 최현준의 어머님을 만났다. 5시에 인천으로 넘어가 정지훈과 정지훈의 어머님을 만나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눴다. 9시에 수유에서 손시우와 손시우의 아버지를 만났다. 대화를 나누며 상호 간에 좋은 시그널이 오고 감을 느꼈다.
첫 미팅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와 무엇이 부족했을까 고민했다. 세 선수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조건을 제시한 게 있었을까 생각해봤다. 그것이 금액이든, 같이 할 멤버든…. 선수나 선수 부모님으로부터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므로 늘 전화 대기 상태로 있었다.”

-업계에선 젠지가 사실상 이틀 만에 이적 시장의 승패를 갈랐다고 보던데.
“17일, 이 단장은 최현준을 설득하기 위해 창원으로 떠났다. 왕복 11시간 동안 운전을 했다고 들었다. 나는 손시우의 마음을 얻으려 남양주로 향했다. 오후 7시경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고, 11시경 그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는 정지훈을 설득하려고 인천으로 향했다. 아마 같은 날 창원에서도 승전보(웃음)가 전해졌다. 정지훈은 마음을 정하는 데 며칠 더 걸렸다.”

-영입 경쟁이 치열했을 텐데, 젠지는 어떻게 세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세 선수가 돈만 보고 입단을 결정한 건 아닐 거로 생각한다. 아마 우승할 수 있는, 밸런스가 잡힌 멤버 구성으로 그들의 마음을 얻은 것 같다. 사실 지난 ‘반지원정대’ 때도 우린 다른 팀과의 머니 게임에서 밀렸다. 한 선수는 4억원을 포기하고 젠지에 합류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젠지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조건을 제시했지만, 선수들이 오로지 금전적인 이익만을 좇았다면 모두 다른 팀으로 갔을 것이다.”

-정지훈을 영입하기 전 곽보성을 한왕호와 트레이드했다. 큰 리스크를 짊어졌던 셈인데.
“원래 젠지 측에선 한왕호를 얻기 위해 ‘버돌’ 노태윤, ‘카리스’ 김홍조, ‘카엘’ 김진홍 등 재능 있는 신인 2~3인을 내주는 1대다(多) 트레이드를 제안하려 했다. 농심에서는 오매불망 곽보성을 원했다. 결국 16일 이적 시장이 열린 뒤 다시 한번 트레이드 논의가 이뤄졌고, 이 단장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앞서 말한 대로 정지훈이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큰 리스크를 짊어진 판단이었다. 이 단장과 농심 오지환 대표, 차민규 단장의 빠른 결단이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트레이드는 한 쪽만 결단을 내려선 결코 성사되지 않는다.
사실 정지훈을 잡지 못하면 플랜B인 허수 중심의 팀 구성으로 선회할 예정이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담원 기아 외의 팀은 절대 허수의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겠더라. 우리가 선회를 고민한 시점은 이미 그가 다른 팀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후였다.
이적 시장의 불문율이 있다. 첫째, 김정균 감독을 피해라. 지난해부터 생긴 둘째, 양대인 감독을 피해라. 우리가 아무리 말을 잘하고,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전설적인 감독과 가장 트렌디한 코치가 있는 팀과 맞붙었을 땐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런데 둘이 같은 팀에 있지 않나. 만약 정지훈이 안 왔다면 우린 김홍조를 주전 미드라이너로 기용했을 것이다.”

-지난 ‘반지원정대’의 2년으로부터 느낀 바가 있었나.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문제였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라스칼’ 김광희는 김광희대로, ‘클리드’ 김태민은 김태민대로 장점이 뚜렷했다. 곽보성은 조건이나 상황을 따지지 않고서 늘 잘해줬다. 그러나 선수들의 플레이스타일에 따른 밸런스가 중요하더라.
박재혁과 정지훈이 한 팀이 된 만큼 2개 라인 주도권은 확실히 잡을 거로 보고 있다. 최현준도 라인전 수행 능력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선수다. 여기에 운영 능력이 좋은 정글러와 서포터가 있으니 금상첨화다.
한왕호에겐 관계자들 사이에서 ‘라이너들이 센 팀에 있어야 제 기량을 온전히 발휘할 선수’라는 평가가 있다. 실제로 그는 ‘쿠로’ 이서행, ‘페이커’ 이상혁, 곽보성 등 리그 톱을 다투는 미드라이너들과 함께 했을 때 가장 빛났다. 그는 이미지와 다르게 ‘뇌지컬(두뇌 플레이)’에 특화된 선수고, 현재는 LCK에서 가장 유니크한 정글러라고 생각한다.
최현준은 올해 KT 롤스터에서 여러 차례 결정적인 플레이메이킹을 해냈다는 데 큰 점수를 주고 있다. 박재혁을 리 신으로 걷어찬 경기가 대표적이다. 하하. 정지훈과 박재혁은 기본적으로 많은 자원을 먹고 캐리하는 스타일이다. 여러 가지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는 최현준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

-노태윤, 김홍조, 김진홍 등 유망주들을 모두 다른 팀으로 보냈다. 아쉬움은 없나.
“세 선수 외에 ‘엔비’ 이명준, ‘영재’ 고영재, ‘론리’ 한규준도 내가 영입했다. 늘 ‘여기에는 1년만 머무르고 더 좋은 기회를 주는 팀으로 이적하라’고 말해왔다. 젠지는 LCK 리드 클럽이 되는 게 목표인 팀이다.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는 팀에서 신인이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선수 부모님께도 ‘많이 지더라도 자주 경기에 나설 수 있는 팀에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노태윤과 젠지는 애초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1순위가 아니었다. 나는 지난해부터 ‘제우스’ 최우제와 ‘오너’ 문현준이 본격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에 이적료를 지불해서라도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잔여 계약 기간과 별개로 노태윤과는 자연스럽게 결별 수순을 밟을 예정이었다.
김진홍은 선수 본인을 위해 이적시킨 것도 있다. 손가락이 정말 좋은 선수인데, 아직 나이가 어리다 보니 내성적인 성격이 치명적인 약점으로도 작용한다. 젠지 1군에서는 그의 장점이 다 발휘되기 어려울 거로 봤다. 리브 샌드박스처럼 또래 친구들이 많은 팀에서 플레이할 때 만개할 가능성이 크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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