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경] 내가 듣고 싶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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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유경] 내가 듣고 싶은 대로

입력 2009-02-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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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꼭 감으시고, 나눠드린 색종이를 한 장씩 손에 쥐세요/ 먼저 손에 쥔 색종이를 반으로 접으세요/ 한 번 더 반으로 접으세요/ 접은 색종이의 오른쪽 모서리를 조금 찢으세요/ 그걸 다시 반으로 접으세요/ 색종이가 조금 두꺼워졌지요/ 이번에는 아랫부분 왼쪽 모서리를 삼각형으로 찢어내세요/ 마지막으로 위 부분 오른쪽 모서리를 삼각형으로 찢어내세요/ 자, 이제 눈을 뜨고 색종이를 펴보세요/ 옆 사람과 색종이 모양을 서로 비교해보세요!"

누구는 두 번 접은 색종이 모양이 정사각형이고, 그 옆 짝꿍은 처음부터 대각선으로 접기 시작해 세모가 되었고, 또 그 옆은 길쭉한 직사각형이다. 거기다가 삼각형으로 모서리를 찢어낸 것도 크기며 모양이 다 다르니 눈을 뜨고 펴본 색종이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듣는 사람 수만큼 다른 모양의 색종이를 서로 들어보이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의사소통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 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다 다르고 색종이 모양에 틀리고 맞은 것 없이 그냥 다른 모양이 나왔듯이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한 명이 말하는 것을 같이 들었는데도 누구는 콩떡으로 듣고 누구는 찰떡으로 듣는 것이야 우리가 수도 없이 경험하는 것. 어떤 때는 우리에게 과연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능력과 의사가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같은 일을 놓고도 내가 듣고 싶은 것만 쏙쏙 골라 들으니 그 해석과 해법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질 수밖에 없다.

용산 철거민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부른 원인만 해도 책임이 있는 쪽에서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니 얽힌 매듭이 도무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일 서울고등법원의 76세 뇌사 상태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 치료 장치 제거'에 대한 선고로 또다시 불붙은 존엄사 논란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의 판결을 남겨두고 있긴 하지만 판결 이전에 삶의 다양한 방식만큼 다양한 죽음의 방식이 있을진대 나와 다르다고 해서 아예 귀조차 기울이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갈 수 있을까.

일단 서로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다음에 서로의 생각 차이를 어떻게 하면 좁히고 정리해나갈지 고민하자. 그러면 분명 공통분모가 되는 지혜로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말이다.

의사결정을 하는데 까다롭거나 힘들지 않고 편하다고 해서 아예 귀를 닫아버릴 것인가. 그건 안 된다. 나와 같지 않은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성숙함의 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다르다'는 것은 서로 같지 않은 것일 뿐, 옳지 않거나 어긋난 것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빨간색과 파란색은 다른 색깔일 뿐 서로 틀린 색깔은 아니다.

유경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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