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아동작가가 사는 법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이광형] 아동작가가 사는 법

입력 2009-03-3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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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23∼26일)에 참가한 일러스트레이터 A씨가 지난 주말 이탈리아에서 귀국하는 길에 기자에게 소회를 털어놨다. 그는 한국이 주빈국인 이번 행사에 국내 유력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참가했다고 밝혔다. 아동서적의 그림작가로 활동하는 그는 유명 대학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젊은 시절엔 그림을 통해 사회운동도 하고 혈기왕성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가족을 먹여 살릴 경제적 책임감에 부닥쳤다. 그림만 그리는 전업작가로는 살아갈 길이 막막해 미술학원을 전전하다 "돈벌이가 좀 된다"는 얘기에 동화책 그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무명이다 보니 그림을 청탁하는 출판사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간혹 섭외가 들어와도 글 작가의 의도에 그림을 맞춰야 했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열어 가겠다는 꿈마저 접고선 10여년 동안 이 바닥에서 땀 흘리니 겨우 알아주는 출판사가 하나둘 생겼다. '일러스트레이터' 내지 '동화 작가'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림책을 한 달에 한 권 정도 1년 동안 쉬지 않고 작업해야 수입은 2000만원선. 할 수 없이 아내도 생업전선에서 뛸 수밖에.

그래도 자신은 사정이 비교적 괜찮은 편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자신보다 못한 작가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림작가의 출판 인세는 3∼5%. 일반 출판물의 저자에게 주어지는 인세가 10%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해외 유명 작가 그림책 번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창작동화는 찬밥 신세이니 국내 작가들의 설 땅이 거의 없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국내 그림작가는 3000명 가량. 대부분 미술대학을 나와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가욋일로 동화책 그림을 그리다 이 길로 빠져드는 실정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아동서적 출간이 문화산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는 동화 작가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에 비하면 주먹구구식 우리 아동출판의 현실이 어떠할지 짐작할 만하다.

이번 볼로냐아동도서전 주빈국 행사는 한국의 아동출판 상황을 전 세계 출판인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는 자리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미술관에서 만난 수학'(여원미디어)이 라가치상을 받았고 '달은 어디에 떠 있나'의 장호 작가와 '줄줄이 줄줄이'의 정지예·한재희 작가가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는 등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겼다. 주빈국관은 한국 일러스트레이터와 이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무대였지만 인식과 지원 부족 등으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 작가로 선정된 31명 중 14명만 참여하는 데 그쳤다. 주빈국 조직위원회 집행부가 볼로냐아동도서전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인사들로 구성돼 특색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A씨가 털어놓은 하소연이 귓전을 맴돌았다. "2006년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동료 작가가 그러더군요. 관심은 그때뿐이고 막상 귀국하니 작업을 제의하는 출판사가 한 곳도 없었다고요. 올해 한국이 주빈국이어서 그나마 작가들에게 반짝 관심을 보였지만,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금세 잊어버리고 말걸요?"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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