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은미] 임산부 누드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정은미] 임산부 누드

입력 2009-07-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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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를 소재로 한 그림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몇몇 작품은 지금도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희망I'(1903년 작)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 임산부의 누드를 묘사했지만 이 작품은 대담하고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으로 꼽힌다. 관능에 대한 클림트의 병적인 집착은 임산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야릇한 표정으로 동물적인 섹시함을 발산하는 만삭의 여성, 그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어머니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클림트는 당시 "처녀들의 어떤 모습보다도 임산부가 옆으로 선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평했다. 남성들이여, 아시는가. 자궁 안에선 임산부와 태아 간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진다는 것을….

클림트와 비슷한 시기에 파울라 모더존 베커와 수잔 발라동이 그린 임산부 모습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여성 화가는 각각 임신하거나 방금 출산한 몸을 자화상 형식으로 그렸다. 당시엔 여성 화가가 임신한 자신의 몸을, 그것도 누드로 그렸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두 화가의 그림 안에는 남성을 유혹하려는 은밀한 시선도 없다. 살찌고 축 늘어진 몸 덩어리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들의 눈은 결코 주눅들지 않고 담담하게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시대의 통념에 당당히 맞서 '여체=생명 창조의 주체'라는 자의식을 대담하게 표현했다.

임산부 누드로 과감한 사회저항을 시도한 작가는 20세기 중반에도 이어졌다. 멕시코 최고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는 '유산·월경·자궁'같은 민감한 주제를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요즘 '여체'는 물론 '만삭의 여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생명의 원천으로서 '임산부의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퍽이나 의미 있는 일이다.

영화배우 데미 무어가 만삭의 몸을 찍은 사진을 공개한 데 영향받은 것일까. 만삭사진을 공개한 국내 연예인도 여럿이다. 배만 봉긋이 나왔을 뿐, 임신해도 여전히 예쁜 여배우들에 자극받아 임산부들 사이에선 'S라인 만들기' 열풍이 불고 있다는 신문기사도 보인다.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싶은 여성의 소망을 누구라서 탓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임신해서 불어난 몸, 출산 후 신체변화 등 출산 후유증을 '비정상'인 것처럼 은연중 몰아붙이는 사회적 분위기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배가 불러도 예쁜 이미지를 담는 거야 그렇다 치자. 혹시 많은 여성들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출산후유증 등 성스러운 의미까지 퇴색시키지 않으면 다행이다.

임신한 몸이 함축한 희망과 잠재성을 숨긴 채 '만삭의 몸'마저 상품화되어 소비의 대상이 돼 버리는 현상은 건강한 사회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주체로서 '여체'는 그 자체로 고귀하게 평가받아야 할 '최고의 예술' 아닐까.

정은미(화가/명지전문대 교수)

반려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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