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 선생 “한국이 살 유일한 길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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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 선생 “한국이 살 유일한 길은 기독교”

입력 2009-08-1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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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4주년… 연동교회 애국지사 16인 열전 낸다

애국은 곧 신앙이었다. '교국불이'(敎國不二). 교회와 국가는 하나라는 의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교회와 국가는 보족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를 탄압한 국가와 정권은 오래 가지 않았으며, 교회가 국가를 지배할 때는 타락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렇다. 국가와 교회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 국가를 위한 교회가 돼야 하고, 교회를 위한 국가가 돼야 한다.

이 땅에 기독교 복음이 뿌려진 이래 지난 124년 동안 한국교회는 국가를 위해 기도했고, 수많은 교인들이 나라와 민족의 이름으로 헌신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국가가 어려울 때 교회는 기도했다. 구한말의 혼란기에 창립된 교회는 국가의 질곡과 함께했다. 국가의 고난에 동참하고 국가를 위해 교회가 고난을 감수했다.

서울 연지동 연동교회(이성희 목사)가 교회 창립 115주년과 광복 64주년을 맞아 '애국지사 16인 열전'을 출간한다. 16인 열전은 교회 창립일인 오는 10월18일 3000부를 발간해 성도들과 경신고, 정신여고 학생 등에게 나눠 줄 예정이다.

집필을 도맡은 고춘섭 은퇴 장로는 "아무리 100년이 넘은 교회라 할지라도 이토록 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교회는 국내는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일"이라면서 "지난 1년 동안을 '수천톤급 광맥 속 노다지 역사'에 파묻혀 살았다"고 회고했다.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을 보필했던 월남 이상재 선생(제1편)은 1902년 개혁당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하는 도중 선교사 게일을 만나 연동교회에 나가게 됐다. 1905년 나라의 운명이 석양처럼 기울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를 외치며 통곡했다. 그는 또 "한국의 유일한 살 길은 기독교에 있다. 하나님을 믿는 길밖에 없다"면서 나라를 빼앗기는 순간에도 전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05년 유배에서 풀려나 서울에 돌아온 이준 열사(제2편)는 연동교회에 입교, 국민교육에 앞장섰다. 2년 뒤에는 헤이그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됐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하나님, 우리나라를 도와주십시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짓밟고 있습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했다.

'한국의 우치무라 간조'로 불린 김정식(제3편)은 1904년 게일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황성기독청년회 총무에 이어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조선 YMCA와 한인교회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19년 2월8일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했다.

함태영(제5편)은 부친의 영향으로 11년 장로가 됐으며 29년에는 위임목사로 부임했다. 그는 민족대표로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학교 창설에 기여했다. 정재용(제6편)은 기미년 3월1일 탑골공원(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을 낭독했다.

12세 때 대구에서 올라온 이갑성(제7편)은 연동교회 전도사랑(전도실)에서 숙식하며 '그리스도 신문'을 배달했으며 33인이 탄생하기까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을 지낸 민충식(제14편)은 폭탄 제조책임자였다.

정운수(제15편)는 평양신학교와 미국 프린스턴대학을 나와서 교육자가 돼야 할 운명이었지만 이승만을 만나서 상하이임시정부 미국지부 구미위원부 위원으로 활약했다.

이 밖에 김필례(4편), 오현관(8편), 김마리아(제9편), 이혜경(제10편), 김영순(11편), 신의경(12편), 장선희(13편), 박기성(16편) 등의 이야기도 실렸다.

이성희 목사는 "과거의 역사와 인물들을 통해 우리교회가 국가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이 책을 발간하게 됐다"면서 "광복절을 맞아 이 역사서가 국가를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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