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선의 동물 이야기] 고라니의 송곳니는 못말려

국민일보

[배진선의 동물 이야기] 고라니의 송곳니는 못말려

입력 2009-10-0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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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야생동물 중 그나마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고라니다. 원래 초식동물인 고라니는 호랑이, 표범 같은 육식동물의 먹이였는데 호랑이, 표범이 사라진 산과 들은 고라니 수를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으니, 고라니가 많아진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매년 가을이면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 하여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그뿐인가. 흔하다는 이유로 가장 많이 밀렵되고, 산 여기저기 뚫린 도로에서 차에 치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대우를 받기에 고라니는 정말 귀한 동물이다. 고라니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중국 양쯔강 일부지역에서만 사는 토착동물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지만 중국에서는 숫자가 많이 줄어 국가차원에서 멸종위기동물로 보호하고 있다.

고라니는 사슴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여느 사슴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언뜻 노루 같지만 노루보다 작고, 사슴같은 크고 멋진 뿔도 없다. 대신 위턱에 2개의 송곳니가 길게 자라나 입 밖으로 나와 있는데, 고라니는 이 송곳니로 나무 뿌리를 캐어 먹고, 나무껍질을 긁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다.

송곳니는 교미 시기가 되면 치명적인 무기가 되기도 한다. 멋진 걸로 치자면 아무래도 뿔이 한 수 위겠지만 무기로 치자면 송곳니도 만만치 않다. 싸울 때는 머리를 들어 상대의 머리를 짓누르는데, 이 과정에서 날카로운 송곳니에 스치듯이 베어도 칼로 베인 것처럼 깊은 상처가 난다. 그래서 교미 시기 지난 수컷들의 몸에는 날카로운 송곳니로 인한 상처들이 남아 있다.

고라니는 겁이 참 많은 동물이다. 작은 몸집에 가진 무기라고는 송곳니 한 쌍밖에 없으니 그럴 법도 하다. 먼 거리에서 사람이라도 만나면 귀를 쫑긋 세우고 빤히 쳐다보다가 가까이 접근할라치면 껑충껑충 뛰어 멀리 도망가 버린다. 그래서 고라니는 몸을 숨길 수 있는 갈대밭이나 관목이 우거진 곳을 좋아한다.

새끼도 풀숲에 낳고 젖을 줄 때만 찾아온다. 매년 5월이면 혼자 있는 새끼를 보고 어미를 잃는 걸로 오인한 등산객들이 데려오다 보니 고아 고라니들이 많이 생겨난다. 올해도 전국에서 구조된, 아니 어미를 잃은 고라니 14마리가 서울동물원에서 사육사가 주는 우유를 먹으며 자랐다. 사진에 있는 고라니는 지난 5월 강원도에서 구조된 녀석인데, 운동도 할 겸 볕이 잘 드는 풀밭에 두었더니 민들레를 잘도 뜯어먹는다.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반려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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