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난국과 파국 사이에서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난국과 파국 사이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절규 이해하지만 이제 국정 정상화에 힘 모았으면”

입력 2014-08-25 03:12

기사사진

가히 ‘난국(亂局)’이다. 세월호 특별법에 발목이 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 말이다. 여야 원내대표가 어렵사리 특별법 재합의안을 도출해냈지만 세월호 유가족과 야당 내 일부 강경파들의 반대로 다시 원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표류하고 있다.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당을 수습하기는커녕 재합의안을 거부하고 단식농성 중이다. 박영선 원내대표도 대통령과 여당에 책임을 전가하더니 여야와 유가족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는 등 재재협상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새누리당은 야당에 재합의안 추인을 촉구하고 있고, 청와대는 국회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유가족 요구를 100% 담은 특별법 마련을 요구하는 농성과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국회는 여전히 마비 상태다. 아직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 중심에 세월호 유가족이 있다. 졸지에 자식을 떠나보낸 유가족 마음이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더욱이 주 원인이 오랫동안 쌓여온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이었다니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유가족들의 불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갈팡질팡한 검찰 수사는 불신을 더 키웠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하고, 더 잃을 게 없다는 절박한 심정은 ‘진상 규명’이라는 외침에 함축돼 있다. 최소한 내 아이들이 무슨 이유로 바닷속에서 숨져야 했는지는 명확히 밝혀야겠다는 절규다. 이런 불신과 갈망이 어우러져 특검 추천위원 선정 과정에서의 여당 배제와 수사·기소권 보장이라는 요구가 나왔을 것이다. 여야와 청와대,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일반 국민들이 유가족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유가족은 진상 규명을 위해선 자신들의 요구가 100% 관철돼야 한다고 말한다.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없다. 하지만 그 방법론은 유가족이 전적으로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미덥지 않더라도 국회가 우리나라 법률체계와 유가족 요구를 두루 고려해 선택하는 게 정도(正道)다. 더욱이 지금까지의 여야 합의만으로도 검찰 수사와 별개로 국정조사와 국정감사, 특별검사, 진상조사위 등 진상 규명을 위한 여러 단계의 활동들을 예상할 수 있다. 진상조사위의 조사관은 100명에 달하며, 특검의 수사 기간은 최장 180일이다. 유가족이 바라는 ‘진상 규명’을 위한 장치가 더 필요한 것인지 차분히 검토해볼 여지가 없지 않다.

미흡하다면서 농성을 이어가는 유가족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안타깝지만, 이쯤에서 그만 접었으면 하는 마음이 많을 듯하다. 벌써 세월호 참사 발생 4개월이 훌쩍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정치권이 유가족 사전 동의 하에 여당 몫 특검 추천위원 2명을 선정하겠다는 재합의안을 내놓았다. 세월호법 때문에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소위 ‘세월호 피로감’이 확산되는 중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도 ‘여야 재협상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45.8%)이 ‘재재협상해야 한다’는 응답(38.2%)보다 높게 나타나는 등 이제는 국정을 정상화하자는 국민이 다수로 보인다. 유가족이 강경 자세를 유지하는 동안 민심이 유가족들로부터 멀어져가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답답한 상황이 장기화되면 파국(破局)으로 치달을 소지가 없지 않다는 점이다. 파국은 유가족을 비롯해 우리 공동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가족과 국민들이 염원하는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 역시 요원해질지 모른다. 나아가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역지사지하면서 양보하는 미덕이 아쉽다. 대통령과 정치권은 물론 유가족도 파국을 막기 위해 너그럽고 속 깊은 마음씨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누구라도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 해선 안 된다. 파국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

김진홍 수석논설위원jh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