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성규] 우리들의 일그러진 공무원

국민일보

[창-이성규] 우리들의 일그러진 공무원

훌륭한 공무원 있지만 국민 섬기는 이들은 적어 새 행정시스템, 운영자부터 바뀌어야 작동할 것

입력 2014-09-27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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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둘째 딸이 태어났다. ‘딸딸이 아빠’ 등극과 함께 국가로부터 출산장려금도 받을 수 있다는 기쁨(?)에 대전 거주지 소재 주민센터를 찾았다.

출생신고를 먼저 한 뒤 옆 창구에 가서 장려금을 신청하면 된다는 안내에 따랐는데 장려금 담당 공무원은 대전시 지원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세종청사로 출입처가 변경되면서 대전으로 이사 오기 직전 둘째 딸이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대전시는 대전 출생자만 지급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이전 서울 주소지 주민센터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서울의 담당 공무원도 “우리는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련 조례에 출생신고를 서울에서 하고 출생 이후 1개월간 서울에서 거주해야 장려금 지급 대상이 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란다.

“내 딸은 서울과 대전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인데 그럼 출산장려금을 못 받는 것이냐?”

서울과 대전 두 명의 담당 공무원에게 따졌지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세금 한번 밀린 적 없는 성실 납세자로 남들 다 받는 복지 혜택을 못 받는 게 억울했다. 그래서 해당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에 민원도 넣고, 청와대 신문고에도 사연을 올려봤지만 결국 우리 가족은 국가로부터 출산장려금 30만원을 받지 못했다.

또 하나. 최근 제보 아닌 제보를 받았다. 소비자 피해신고 접수 번호인 ‘1372’를 눌러 과연 얼마 만에 상담원과 통화가 되는지 확인해보라는 내용이었다. ‘길어야 10분 대기하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시작한 시험은 고도의 인내력 테스트로 바뀌었다.

‘상담원이 통화 중이니 대기해 달라’는 기계 안내음을 한 10분 듣고 있으면 갑자기 ‘통화가 되지 않으니 다음에 걸어주세요’란 안내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그러기를 4∼5번, 결국 상담원과의 통화를 포기했다. 대기시간이 얼마나 된다는지, 번호를 남겨주시면 연락을 하겠다는 그 흔한 음성안내도 들을 수 없었다.

새삼스레 이 두 가지 일이 떠오른 것은 지난 23일 정부가 발표한 ‘새로운 정부 3.0 발전계획’ 때문이다. 정부가 행정서비스의 근본 시스템을 개혁해 연말정산, 육아수당 신청 등 국민이 신청해야 받을 수 있던 서비스를 정부가 알아서 챙겨주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찾아가는 서비스’ ‘선제적 서비스’ 등 민간 서비스 업체 광고에서나 볼 수 있던 단어들도 눈에 들어왔다. ‘정부 3.0’은 공공 정보를 개방하고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 국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다.

관련 기사를 쓰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과연 바뀔까’라는 의구심이 솟아올랐다. 만 18세가 돼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동사무소를 방문한 이후 20년 넘게 관공서를 드나들면서 봐 왔던 공무원의 모습과 정부 3.0의 ‘찾아가는 서비스’ 모토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즐거운 낯으로 동료들과 대화하다가도 고개를 돌려 민원인을 보면 이상하게 굳은 표정이 되곤 했다.

물론 기자가 된 뒤 ‘취재원’으로 만난 훌륭한 공무원도 많다. 과로로 쓰려져 병원에 입원한 뒤 지금 퇴원하면 죽는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링거 줄을 뽑고 출근한 경제부처 한 과장의 책임감에 놀랐다. 세종청사 이전으로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어 원룸에 돌아가 홀로 속옷을 빨면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도 많이 봤다. 그래서 나름대로 ‘공무원은 개인적으로 알고 보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평범한 다수의 국민들이 바라보는 공무원의 모습은 일그러져 있는 게 사실이다. 4·16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공하고, 여고생 앞에서 음란행위를 하고, 나사 풀린 원전 부품 대가로 뒷돈을 받고 한 것 모두 공무원들이다. 국민들은 공무원의 민낯을 너무 많이 봐왔다.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에서 여론이 공무원들에게 등을 돌린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한 공무원은 이를 두고 “우리의 원죄”라고 한탄했다. 그는 근대화 이후 수십 년 동안 ‘모피아’(재무부+마피아)라고 불린 경제부처 고위 관료부터 동사무소 말단 직원까지 국민을 섬기고 두려워하기보다는 국민을 발판삼아 특권을 누려왔다는 것을 인정했다.

시스템이 훌륭하게 바뀐다 해도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그래서 말인데 새로운 정부 3.0의 구호는 ‘국민에게 사랑받는 공무원이 되겠습니다’가 우선일 듯싶다.

이성규 경제부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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