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재호] 정보 홍수의 역설

국민일보

[돋을새김-정재호] 정보 홍수의 역설

입력 2014-11-11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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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계는 입만 열면 ‘디지털퍼스트’다. 아직 실험 중이지만 초창기 인터넷뉴스 서비스 때와는 달리 각 신문사의 중추인 편집국을 중심으로 혁신과 개조를 진행하고 있어 귀추가 기대된다. 디지털퍼스트에 임하는 태도와 방식에서도 진지함과 비장함이 묻어나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디지털퍼스트가 실현되려면 편집국의 오랜 관행과 문화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각 신문사들이 추진하는 디지털퍼스트 전략은 인력·조직·콘텐츠·기술·유통(플랫폼) 등 5개 분야로 요약된다. 이들 각 분야가 아직 성공 사례가 많지 않고 경험 축적이 미흡한 터라 개척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절감한다.

디지털퍼스트 핵심은 콘텐츠

지난 10여년간 인터넷뉴스 서비스는 닷컴들(자회사 또는 본사의 인터넷 전담부서)의 몫이었다. 닷컴들은 편집국이 생산한 뉴스를 인터넷에 유통하는 기능을 맡아 왔다. 종이신문 배달에 해당하는 유통이 포털사에 종속되면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 가운데 ‘조회수가 곧 광고수익’이란 미명 아래 닷컴들이 쏟아낸 기레기(기사+쓰레기)와 어뷰징(동일 기사 반복 전송) 관행은 언론의 공적 기능과 언론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오불관언식 방관자 입장에 섰던 편집국이 구축(驅逐) 당할 형국에 처한 것이다.

특히 편집국의 몫인 기사 콘텐츠 혁신은 마치 눈 위에 길을 내는 것처럼 어렵게만 느껴진다. 기사 텍스트에 사진과 동영상을 덧붙이고 스토리텔링과 인터랙티브 기법을 도입하는 시도들이 일부 있지만 그것은 기교와 형식의 변화에 불과하다. 이런 것들로는 일시적으로 눈길을 끌 수 있을지 몰라도 벌써 고개 돌린 디지털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중과부적이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깊은 시름에 빠져 있던 차에 삼성전자 이인용 커뮤니케이션팀 사장과 조정민 목사(베이직커뮤니티처치)의 조언을 잇달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사장은 미디어 업무를 총괄하는 글로벌 기업의 CEO 일원이고, 조 목사는 기독교 세계관을 설파하는 목회자라는 점에서 국민일보가 지향하는 디지털퍼스트 혁신에 안성맞춤 인사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언론을 잘 아는 방송기자 출신이다.

“‘홍수의 역설’을 생각해보자. 홍수가 나면 물은 넘쳐나는데 마실 물이 없다. 정보 홍수의 시대다.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는데 정작 생명을 살릴 생수 같은 뉴스가 없다.”

이 사장은 “여기에 길이 있다”고 했다. 바로 퀄리티 페이퍼(Quality Paper·고급지)였다. 속보경쟁, 선정주의, 이념 편향성, 포퓰리즘에 매몰되어 있는 대중지를 벗어던지고 용기 있게 다른 길, 고급지로 변신하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시장과 수용자가 고급지를 원하는 때가 됐다는 취지도 덧붙였다.

한 달여 뒤 만난 조 목사 역시 새 길을 제시했다. 18만명의 팔로어(트위터 친구)를 가진 그는 “세상에 수많은 죄인과 악인의 메시지가 넘치지만 생명을 담아낸 샘물 같은 메시지를 쏟아내는 이는 드물다”며 새로운 메시지와 미디어를 주문했다.

두 사람이 바깥에서 올드 미디어에 바라는 것은 표현과 비유만 달랐지 본질이 같았다. 정보 홍수 속에서 기꺼이 돈 내고 사 마실 생수 같은 메시지와 미디어, 그것이었다. 홍수는 콘텐츠 생산자가 쏟아낸 것이라면 생수는 수용자가 갈급하고 있다.

'펀딩뉴스' 실험 주목할 만하다

이런 점에서 독자가 기사 생산에 직접 참여하고 취재비를 후원하는 ‘펀딩뉴스’ 실험은 주목할 만하다. 포털 ‘다음’이 지난 9월 도입한 것으로, 14개 프로젝트가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어떤 프로젝트는 6900만원의 후원금을 모금했고 1000만원 이상 모금한 프로젝트가 몇몇 눈에 띈다. 포털을 매개로 기자와 독자가 매칭하는 방식이라 포털의 개입, 편향성과 상업성 시비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소지가 없지 않지만 실험 단계인 만큼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언론사가 앞장서서 도입했어야 할 서비스이고 포털 1위 ‘네이버’가 먼저 상생의 물꼬를 열었어야 할 일이 아니었나 싶다.

정재호 편집국 부국장 jhju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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