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지호일] 시라토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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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지호일] 시라토리 사건

입력 2015-02-02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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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월 21일 밤 일본 삿포로 중앙경찰서 경비과장 시라토리 가즈오가 피살됐다. 눈 덮인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괴한이 쏜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그는 좌익운동 수사 베테랑으로 수많은 공산당원들을 체포했다. 사건 이틀 뒤 ‘보라, 마침내 천벌이 내려졌다’는 공산당 삿포로위원회 명의의 전단이 뿌려졌다. 수사는 공산당원들에 집중됐고, 끝내 살인범은 잡히지 않았지만 대신 삿포로위원회 총책(일명 ‘K’)이 살인 공동모의 혐의로 구속됐다. 일본 사회파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가 1961년 발표한 논픽션 ‘일본의 검은 안개’에 들어 있는 ‘시라토리 사건’ 편의 개괄이다. 세이초는 글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당시 수사·재판 기록 등을 근거로 들었다.

63년 전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면서 이석기 전 의원 내란선동 사건을 떠올렸다. 사건의 발단이나 기본 성격은 판이하지만, 당국의 수사 경과와 그에 따른 결말은 유사한 대목이 여럿 있다. 우선 당국이 공산당 하부 비합법적 지하조직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었던 건 내부 고발자의 등장 이후였다. 총책인 K는 지역별 지부를 두고 ‘중핵자위대’를 편성해 ‘군사 행동’을 준비했다. 이들은 권총과 탄약을 모으고 수류탄, 화염병을 만들었다. 한 조직원 집에선 ‘영양식단표’로 위장한 폭발물 제조법도 압수됐다. K는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던 도중 체포됐다. 그는 수사 기관에서 철저히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법정에서 입을 열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결국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저자는 시라토리 사건 수사가 공산당을 타깃으로 왜곡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도 공산당이 ‘군사 투쟁’ 지침을 내렸던 것은 사실일 거라고 봤다. 이 사건으로 일본공산당의 주축 삿포로 공산당은 ‘형편없이’ 무너졌다. 이 전 의원은 ‘한 자루 권총론’을 내세워 군사적 준비를 지시했다가 통합진보당 해산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다. 폐쇄적 (지하)조직의 과격한 투쟁은 예나 지금이나 말로가 좋지 않다.

지호일 차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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