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본받을 만한 일본인들의 극기력… “엄청난 고통에도 감정 절제하고 타인·공동체 배려”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본받을 만한 일본인들의 극기력… “엄청난 고통에도 감정 절제하고 타인·공동체 배려”

“엄청난 고통에도 감정 절제하고 타인과 공동체 먼저 배려하는 언행 부러워”

입력 2015-02-23 02:36 수정 2015-02-2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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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달쯤 지났다. IS(이슬람국가)가 일본인 사업가 유카와 하루나씨를 살해했다고 발표한 날이 1월 24일이었다. 지난 1일엔 프리 저널리스트인 고토 겐지씨마저 참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두 희생자 중 고토씨가 주목받고 있다. 중동 등 분쟁지역의 어린이 인권 문제를 꾸준히 보도해온 그의 이력과 IS에 붙잡힌 유카와씨를 구출하기 위해 시리아에 갔다가 목숨을 잃은 사연이 알려지면서 ‘나는 겐지다(I AM KENJI)’라는 애도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건 유가족들의 반듯한 자세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 맞나 싶을 정도로 극도의 절제력을 보여줬다. 고토씨의 어머니는 “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고, 형은 “매우 안타깝다. 동생의 석방을 위해 노력한 일본정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유카와씨의 아버지는 “고토씨는 내 아들을 걱정해 목숨을 걸고 현지에 들어갔다. 미안하고 괴롭다. 또 정부 관계자들에게 (자식의 일로) 폐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동을 방문해 IS와의 전쟁에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직후 IS의 보복이 이뤄졌음에도 정부를 탓하는 유가족은 없었다. 오히려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다.

되돌아보면 1만80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돼 ‘인류의 대재앙’으로 불리는 2011년의 3·11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참사 때도 일본인들의 침착한 대응은 감탄을 자아냈다. ‘일본인의 시민의식은 인류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평까지 나왔다. 구조대가 찾아오자 자신은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부터 구조해 달라고 요청하고, 생필품이 부족한데도 수백명이 줄을 서서 질서를 지켜가며 꼭 필요한 만큼의 물품만 구입했다. 사재기나 약탈은 없었다. 정부 관계자들의 멱살을 잡고 항의하거나 원망하는 유가족도 없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들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를 ‘메이와쿠(迷惑) 문화’로 설명한다. 메이와쿠는 ‘민폐(民弊)’라는 뜻으로, 타인에게 폐 끼치는 것을 꺼리는 일본인 특유의 DNA가 작동해 극한 상황에서도 예의를 갖춘다는 얘기다. 연유야 어찌됐든 비참한 상황에 처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은 그들의 언행은 부럽다. 일본은 가까우면서도 가까이하기 힘든 나라다. 하지만 일본인의 이타심은 본받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 때문에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경우 적지 않은 인명·재산 피해를 수반한 사건·사고가 나면 피해자들이 울부짖으며 정부를 탓하는 게 거의 관행처럼 굳어져버렸다. 제삼자가 가세해 반(反)정부 투쟁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악성 루머도 활개 친다. 정부의 잘못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양 주장하는 건 옳지 않다. 정부를 탓하는 게 사태 해결과 공동체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지, 당사자들 잘못은 없는지 한번쯤 자성하는 여유를 가져야 하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의연함을 잃지 않고 타인과 공동체를 먼저 배려하는 고토씨와 유카와씨 유족들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만 일본인들이 시대착오적인 정치인을 지도자로 내세운 건 아쉽다. 일제(日帝) 침략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은 채 역주행을 일삼는 아베 총리로 인해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판이 나빠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아베가 아니다(I AM NOT ABE)’를 외치는 일본인들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이웃나라들을 괴롭히는 것 또한 일종의 ‘메이와쿠’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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