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다시 읽는 ‘거대한 체스판’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최현수] 다시 읽는 ‘거대한 체스판’

한국, 美·中 틈바구니서 균형 잃지 말아야

입력 2015-03-26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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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쓴 ‘거대한 체스판’을 다시 집어 들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논쟁이 21세기 유라시아의 움직임을 전망했던 전략가의 예지력을 상기시켜서다. 브레진스키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과 국가안보회의(NSC) 의장을 역임한 미국의 전략가이다.

거대한 체스판은 구(舊)소련 붕괴 후 유라시아에서 벌어질 미국과 신흥 패권국이 될 가능성이 있는 중국, 미국의 동맹국이면서도 호시탐탐 독자 세력 확장을 추구하는 일본, 통일을 원하는 한국에 대해 기술했다. 이 책은 16년 전에 쓰였지만 현재 요동치는 동북아 상황을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있다.

브레진스키가 가장 주목한 존재는 역시 중국이다. 그는 당시 지역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세계적인 패권국가로 부상할지, 주변에 ‘경의를 표하는 국가’로 출연할지는 분명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보면 중국은 ‘훨씬 더 큰 야심’을 갖고 있다고 봤다. 제대로 본 셈이다. 중국은 이미 미국을 위협할 정도의 강한 패권국으로 부상했다. 그는 중국이 불평등한 (혹은 조공) 관계를 관리하는 데 오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주변국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압박하는 데 능숙하다는 지적이다. 베트남 등과 갈등을 겪고 있는 남사군도에 대한 무력시위나 방공식별구역을 막무가내로 확대시킨 행태, 최근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놓고 주변국에 가하는 압박 양상을 보면 이 또한 틀린 것 같지 않다.

한국에 대해서는 미·중 분쟁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 점이 눈길을 끈다. 한국의 재통일은 심각한 지정학적 딜레마가 될 것으로 봤다. 한때 자신의 ‘조공국’이었던 통일한국에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중국은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통일한국에 미군이 남아있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미국의 행동반경을 일본이라는 ‘고독한 횃대’ 위로 제한하려 할 것으로 전망했다. 불편한 속내도 털어놨다. 주한미군이 없는 통일한국이 초기에는 중립을 취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차츰 중국의 확고한 정치적 영향권 또는 교묘하게 중국의 권위가 존중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걱정했다. 워싱턴에서 종종 한국이 중국과 너무 가깝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다.

이쯤 되면 미국과 중국이 왜 사드 문제를 놓고 한국을 강하게 압박하는지 이해된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드배치는 간단한 사안이다. 여당 대표가 “핵보유국으로 봐야 한다”고 거론할 만큼 핵무장에 성큼 다가간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한반도에 중첩적인 방어망을 구축한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반겨야 할 입장이다. 물론 사드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미군은 2005년부터 성능시험을 했고 성공률은 80%로 알려져 있다. 사드 제작사인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이 제공한 자료에 기반한 거다. 실제 성능을 확인하기 힘들다. 중국이 우려한다는 사드의 레이더가 실제 위험스러운 존재인지도 의문이다. 실체적인 진실은 밝혀져야 하겠지만 사드 배치가 군사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한국의 고민이 있다.

사드 논란은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팽창하려는 중국과 단단한 교두보를 마련해 밀리지 않겠다는 한 판의 충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한국은 사사건건 이런 힘겨루기에 연루될 가능성이 크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안보적인 필요뿐 아니라 한반도 통일과 그 이후까지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깊은 고려가 있어야 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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