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기] 샤넬의 패션 철학

국민일보

[한마당-김상기] 샤넬의 패션 철학

입력 2015-03-30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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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프랑스 소뮈르에서 태어났다. 세계적인 브랜드 ‘샤넬’을 창시했으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데다 어머니마저 샤넬이 열두살 때 세상을 떠났다. 샤넬은 여동생과 고아원에 맡겨졌고 그 여동생은 고아원에서 숨졌다. 어린 샤넬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의 연속이었다.

샤넬은 성공을 갈망했다. 물랭의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었지만 언젠가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리라 다짐했다. 가녀린 몸매와 검은 눈, 하얀 피부에 도도한 매력까지 지녀 그녀에게는 구애가 잇따랐다. 육군 장교 에티엔 발장의 정부였던 샤넬은 영국 사업가 아서 에드워드 카펠을 만난 뒤 1910년 캉봉 거리에 ‘샤넬 모드’라는 모자 가게를 내면서 유럽 패션을 주도했다.

그녀의 패션 철학은 간단했다. 실용적이고 편안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매고 화려한 장식과 값비싼 드레스를 강조한 유행을 샤넬은 증오했다. 코르셋을 없앴다. 바닥에 끌리던 드레스 길이를 무릎까지 올렸고 남성 정장에서 볼 법한 직선의 실루엣을 선보였다. 그녀의 혁신은 1920년대 여권 신장 운동과 맞물리면서 새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샤넬은 72세이던 55년에 ‘샤넬 2.55백’을 선보이며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발휘했다. 당시 여성 가방에는 대부분 짧은 손잡이만 달려 있었는데 가방에 체인을 매달아 여성들에게 양손의 자유를 선사한 것이다.

71년 샤넬 사후에도 승승장구하며 ‘노 세일’을 고수하던 샤넬이 최근 일부 인기제품의 백화점 판매 가격을 최고 20% 이상 내렸다.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벌어진 글로벌 가격 평준화를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격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난으로 고아원을 전전하다 상류층의 사치를 경멸하며 합리적인 가격과 실용미로 여권 신장에까지 큰 역할을 해낸 샤넬의 패션철학이 퇴색한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김상기 차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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