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종걸] 성공하는 정부의 최소 조건

국민일보

[경제시평-김종걸] 성공하는 정부의 최소 조건

메르스 사태 키운 정부의 무능·무책임… 헌법대로 ‘국민 보호하는 국가’였으면

입력 2015-06-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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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나라가 점점 싫어진다.” 페이스북에 적은 한 친구의 마무리 말이다. “여태껏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다 했다. 하지 말라면 하지 않았다. 성실히 번 돈으로 아이들 교육시키고, 나이 드신 부모님 봉양하고, 스스로 보기에도 애국하며 살아왔다.” 가슴이 아려왔다. 50대 중반에 다가선 나이에 나 자신도 내 친구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대한민국의 화두는 재난 대응이었다. 그것이 차가운 물속으로 잠겨갔던 세월호 아이들이 우리에게 준 과제였다. 그래서 이번 메르스에 대해서는 좀 더 유능하고 기민할 줄 알았다. 역할과 책임이 분명히 정해지고 관련 부처와 담당자가 조직적으로 대응할 줄 알았다. 그거 하겠다고 지난 1년을 보냈었다. 국민안전처, 인사혁신처를 새롭게 발족하고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고, 위기관리 체계를 정비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철저히 무능했다. 전염력이 낮다고 했으나 4차 감염이 현실화됐다. 건강하면 감기처럼 지나갈 것이라 했으나 중증 환자와 사망자는 속출했다. 교육부는 휴교를 말하고 복지부는 등교를 말한다. 18일간이나 감염된 병원 명단을 숨겼으며, 그동안 메르스는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채 확산됐다. 그나마 나중에 공개된 병원 명단도 부정확했다. 마스크 쓸 필요 없다는 복지부 장관의 발언은 그냥 과로로 인한 빈말이었다고 치자.

무능만이 아니다. 무책임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복지부 장관은 매뉴얼에 따라서 잘 대응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의 감염내과과장은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병원이 2차 확산의 중심이었던 것이 밝혀졌는데도 말이다. 어떻게 이리도 당당할 수 있는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민관합동종합대응팀,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즉각대응팀 등 컨트롤타워는 어지럽게 난립했다. 누가 결정하고 책임지는지 오리무중이었다. 당연히 정보 공개, 병원 폐쇄 등 신속한 결정은 불가능했다.

정치적 갈등도 가관이었다. 한 중진 정치인은 “핵무기보다 중동낙타독감을 더 겁내는 대한민국”이라고 재담을 자랑했다. 북핵 문제가 왜 여기 끼는가. 청와대도 새누리당의 당정청 회의 요청을 거부했었다. 국회법 개정안과 메르스 대책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심야 발표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협력해도 힘겨울 판이나 갈등만 고조된다.

전염병에 취약한 병원의 현실도 여실히 드러났다. 응급실, 중환자실은 군대 내무반과 같으며 입원실은 난민촌과 같다. 전염병과 일반병 환자가 같이 누워 있으며, 간병과 문병으로 입원실은 혼돈스럽다. ‘의료 선진국’ 한국의 스산한 현실이다.

집사람과 함께 아침마다 뉴스에 집중한 것은 ‘세월호’ 이후 처음이었다.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을 말하지 않는다. 불안을 잠재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 하지만 소리 내지 않는다. 그런다고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 백주대낮에 경제대국 한국을 엄습한 역병 속에서 또 다시 발견한 것은 우리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정략적 갈등, 낮은 의료복지 수준의 현실인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가 재난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34조6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무원은 국민에 대해서 책임(7조1항)을 지며 대통령은 그 수반(66조4항)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1조2항),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10조)가 있다고 말한다. 이번을 계기로 국민의 행복을 진정으로 책임지는 유능한 정부가 되기를 기원한다. 헌법대로만 하면 된다. 그것이 성공하는 정부의 최소조건인 것이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