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이명찬] 왜 ‘패전’을 ‘종전’이라고 불렀나

국민일보

[한반도포커스-이명찬] 왜 ‘패전’을 ‘종전’이라고 불렀나

진 게 아니니 책임도 질 필요 없다는 입장… 인접국과 갈등도 패전의 부인에서 비롯

입력 2015-08-0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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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제2차 대전에서의 ‘패전’을 ‘종전’이라고 부를까. 시라이 사토시(白井聰)의 ‘영속패전론(永續敗戰論)’이 그 답을 제시한다. 그는 ‘패전’을 ‘종전’이라고 달리 호칭함으로써 전전의 체제가 온존돼 왔고, 국민이 전체로서 군국지배층의 노예로 취급됐던 그 구조가 기본적으로 지속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 사실에 대해 대부분 일본인들은 대체로 냉전 구조와 전후 일본의 경제적 성공 덕분에 직시하지 않고 살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전’은 패배 사실을 애매하게 하는 것이며 ‘패배의 부인’이다. ‘패전을 종전으로 슬쩍 바꿔치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최대 이유는 필패를 사전에 알았던 전쟁에 국민을 몰아넣은 지배층이 패전의 책임을 애매하게 해 전후에도 계속해서 지배를 이어가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의 전후 처리는 처음 대두됐던 천황의 전쟁 책임을 군부의 책임으로 넘겨버리고 이것을 다시 전 국민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억 총참회론’을 펼치며 명확한 의도를 갖고 추진되었다.

패전한 것 자체가 애매하게 돼 ‘패전이 아닌 종전’이라는 이미지에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은 고착화됐다. 애초부터 패전한 것이 아니라면 누구도 책임이 추궁될 이유가 없어지므로 전쟁 책임자들에게는 실로 훌륭한 논리다. 이 논리는 미·일 합작에 의해 성립되었다. 미군정은 극히 한정된 형태로밖에 전쟁 책임을 추급하지 않음으로써 전전의 지배층을 전후의 통치자로 재기용하는 한편 좌익을 비롯한 비판세력을 억제하는 방향성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한 ‘역코스’ 이후 현저해진 기본방침이었다.

전전 체제가 온존해 온 사실에 대한 일본 국민의 망각 또는 무의식화가 가능했던 것은 전후 일본의 경제부흥·고도성장이라고 하는 경제적 성공이었다. ‘연합국=전승국’인 소련과 중국보다 확실히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한 전후 일본인에게 그 전쟁은 ‘졌지만 이긴’ 것으로 돼 ‘패전’의 ‘종전’으로의 전환이 국민의식 속에 현실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꿔치기’가 의식 속 현실이 됐다 하더라도 기만은 기만에 불과할 뿐이다. 그 대가는 무한한 대미 종속이다. 전전부터의 연속체로서의 전후 지배층은 미국의 허용과 승인에 근거하여 통치해 온 이상 미국에 예속돼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러면서 예속이야말로 패전의 증거이므로 패전을 애매하게 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대한 예속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독립’이라든가, ‘전후 정치의 총결산’ 또는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이라고 하는 유사한 슬로건들이 동일 정치세력으로부터 반복돼온 것은 이러한 사정이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대미 관계에서 패전의 결과를 무제한으로 승인하는 대가로 아시아에 대한 패전은 전력으로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실이 아시아 국가들과 전후 보상이나 역사인식 문제를 둘러싸고 반복되는 알력을 불러일으켜 왔다. 대미 종속과 아시아에서의 고립이라고 하는 두 사항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고 중요 파트너라는 지위가 있는 한 아시아에서 고립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아베 총리의 태도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체제는 이미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이상의 구도는 냉전구조와 아시아에서의 일본 경제력의 돌출성에 의해 가능했던 것인데, 냉전구조는 붕괴했고 경제는 쇠퇴했다. 이와 더불어 아시아 국가들이 이전에는 삼켜왔던 일본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고 분출하게 되었다. 패전을 의식 밖으로 몰아냈던 국민에게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패전을 부인하고 ‘그 전쟁은 패한 전쟁이 아니라 단순히 끝난 것’이라는 역사인식을 국민에게 주입시켜온 결과이다.

이명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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