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남도영] 복잡해진 재벌 상속 방정식

국민일보

[세상만사-남도영] 복잡해진 재벌 상속 방정식

편법 승계를 바라보는 비판여론 확산일로… 법적 절차 이상으로 사회적 함의 따져봐야

입력 2015-08-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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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재벌그룹은 두산이다. 118년이 됐다. 박승직 창업주로부터 시작돼 2세 박두병 초대회장을 거쳐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회장 등 3세들이 중심이고, 박정원 ㈜두산 회장 등 4세 10여명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두산이나 LG 등을 제외한 대부분 그룹은 2세가 중심이다. 문제 많았던 롯데 신동빈 회장도 2세고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도 2세다. 넓게 보면 지금 시기는 2세에서 3세들로 경영권이 서서히 넘어가는 시기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의 8부 능선을 넘었다고 하고,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도 물밑에서 승계를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 중인 듯하다. 재벌들의 승계 문제는 사회적 관심사다. 한국 재벌은 기업이라는 성격도 있지만, 사회적 권력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돈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재벌들의 상속 방식은 진화해 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권력에 미운털만 박히지 않으면 승계는 무리 없이 진행됐던 것 같다. 사회적 감시 체계가 강화되고 불법·편법 상속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들이 보완되면서 재벌들의 승계는 복잡해졌다.

승계의 핵심은 50%에 달하는 상속세를 피하는 방법이다. 재벌들은 여러 가지 복잡한 방식을 이용해 상속세를 피해 왔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는 유·무상 증자(물타기)가 많이 이용됐다. 비상장 계열사가 증자를 하면서 액면가로 2세들에게 주식을 배정하고, 상장하면 시세차익을 거뒀다. 90년대 들어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복잡한 채권이 승계수단으로 등장했다. 전환사채를 싼값에 넘겨받은 후계자는 이를 주식으로 전환해 대주주가 되는 방식이다. 2000년대 들어 ‘일감 몰아주기’가 유행했다. 재벌 계열사들이 후계자가 세우거나 대주주인 작은 비상장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 회사가 커지고 후계자의 지분가치도 덩달아 커지는 방식이다. 요즘은 기업 간 합병이 대세인듯 하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과정들을 거치게 되는데, 결론적으로 후계자의 지분과 재산이 늘어나게 된다.

재벌들의 상속 방식만 진화한 것은 아니다. 더디긴 해도 이를 막는 사회적·제도적 장치들도 꾸준히 진화했다. 2013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일감 몰아주기는 금지됐다. 분리형 BW도 편법 상속·증여에 악용된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편법 승계를 막기 위해 유·무상 증자에도 금지조항들이 달렸다. 버스 떠난 뒤에 손을 흔든 격이라는 비판도 많지만, 어쨌든 견제 수단들은 진화했고 금지 조항들은 촘촘해졌다.

앞으로 기업과 재산을 물려받아야 할 재벌 3, 4세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머리가 좋아야 할 것이다. 상속을 위해 풀어야 할 방정식이 복잡해졌다. 3차 방정식을 넘어 고차방정식이 됐다. 변수도 많아졌다. 대부분 정보가 공유되고, 복잡한 승계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늘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누르고 한국과 일본 롯데의 단일 회장으로 인정받았다. 상법상 절차와 주주 설득이라는 20세기적 수단을 동원한 신 회장이 아버지와 가족 동원이라는 19세기적 수단을 사용한 형을 이겼다. 지금은 21세기다. 신 회장은 우여곡절 끝에 롯데그룹의 수장이 됐지만, 신 회장의 장남(29)이 그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승계가 예약된 3, 4세들은 아버지 세대보다 더 많은 사회적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남도영 산업부 차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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