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복실] 소통에 필요한 것들

국민일보

[청사초롱-이복실] 소통에 필요한 것들

마음만 먹으면 대화하기 쉬운 요즈음… 진정성 없는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입력 2015-09-30 00:30 수정 2015-09-3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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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통이 화두다. 소통하니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몇 달 전 모임에 갔더니 모 기관의 간부인 K씨가 큰소리를 뻥뻥 치고 있었다. 언론에서 보도된 성희롱 사건이 화제였다. “나는 성희롱과 전혀 상관없어요. 모든 사람이 다 성희롱으로 걸려도 나는 아니에요. 그 이유는 항상 직원들과 소통이 잘되니까요.” 술이 한두 잔 들어가니 자신감이 더 붙는다. 큰 목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소통이 잘되니 직원들과도 말을 트고 지내요.” 속으로 묻고 싶었다. ‘직원들도 그리 생각할까요?’ 그가 왠지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직원협의회에서 만나자고 하더니 한마디 하더란다. “우리에게 반말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 뒤부터 그는 엄청나게 말조심, 행동조심을 한단다.

사건이 나기 전에는 이러한 일방적인 소통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알기가 쉽지 않다. 평범한 말을 해도 부하 직원들이 웃어주니 내가 유머감각이 있나 착각하기 쉽고, 예의상 끄덕거려 주니 내 말이 다 맞나 보다 생각한다. 소통이 안 될수록 그런 증상은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관계는 완전히 다르다. 존칭이나 반말이 문제가 아니라 못하던 말까지 하게 한다. 최근 지인을 만났더니 신기하다며 자기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강아지 ‘응삼’을 어려서부터 가족처럼 키운다. 그런 응삼이가 벌써 16살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 응삼이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아버지, 아버지, 저 응삼이에요. 아버지 근데 제가 아파요. 간이 안 좋아요.” 아이고! 깜짝 놀란 지인은 다음날 눈뜨자마자 응삼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응삼이는 간 상태가 심각했다. 그야말로 개꿈이지만 사실이었다. 수의사는 한술 더 뜬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진정성이 통하면 이런 일도 생기나 보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평소 매사에 엄중하고 진지한 지인의 말을 그냥 믿기로 했다.

요즈음은 스마트폰과 SNS까지 생겨서 마음만 먹으면 소통하기가 쉽다. 비용도 거의 안 들고 편리하다. 그럼에도 진정성 있는 소통은 그중 얼마나 될까. 양과 질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법칙이 소통에도 성립되나 보다. 진정한 대화와 소통이 필요한 건 매일 얼굴을 보는 가족도 마찬가지다. 명절 앞두고 쌓이는 주부들의 명절 노이로제에 대해, 일 년에 한두 번 조상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 무엇이 힘드냐는 남편들도 서로의 역할 차이에 관한 이해가 필요한 대상이다. 지금 내가 출강하고 있는 학교에도 대자보가 크게 붙어있다. 의견수렴을 하지 않고 구성원들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적은 것이다. 파면당한 어느 교수의 이야기도 시뻘건 글씨로 크게 벽면에 붙어있다. 아마도 일 년 내내 붙어있는 것 같다.

필자도 30년 직장생활하면서 만난 사람이 몇 명인지 숫자를 다 세기도 어렵다. 사회에서의 만남은 이해관계로 만나니 진정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공직을 그만두면 관계가 어떻게 변할까?’ 궁금했다. 결과는 ‘그래도 헛살지는 않았네요’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니 참고서적을 주며 격려하는 분들, 힘을 내야 하니 밥을 먹자는 분들, 격려는 기본이고 칭찬은 덤이었다. 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용서해 주시라! 진정성은 소통하면서 더 채워지고 강해진다. 강아지와도 소통하는데 왜 사람과 소통이 안 되나?

진정성 없는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동물도 진정성이 있으면 꿈에 나와서 말을 하는 세상이다. 마음으로나 이제는 늙고 힘이 빠진 응삼이를 응원해본다. ‘응삼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이복실 숙명여대 초빙교수·전 여성가족부 차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