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고승욱] 게이트 키핑, 개념이 바뀐다

국민일보

[데스크시각-고승욱] 게이트 키핑, 개념이 바뀐다

공급자·소비자 구분 모호한 온라인뉴스…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라도 보완해야

입력 2015-10-01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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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편집국에서는 ‘킬’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콩글리시지만 의미는 명확하다. 기사 써봐야 소용없으니 그만두라는 뜻이다. 수습을 갓 뗀 신참기자가 이곳저곳을 열심히 돌아다닌 끝에 간신히 기사거리를 찾아 보고했을 때 흔히 듣는다. 데스크는 “킬. 다른 거 찾아봐”라고 내뱉듯 말하곤 한다.

‘킬’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정확히 따지지는 않았지만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가장 많다. “그거 소설 아냐?” “어디까지가 팩트(fact)야?” 데스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고 곧바로 반박하지 못하면 기자 생활이 무척 어려워진다.

다른 경우는 광고효과를 노리거나, 보도되면 누군가 공정하지 않은 이익을 얻는 기사다.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은 특히 그렇다. 정치·이데올로기적으로 어느 한쪽의 주장만 담은 기사도 다루기 어렵다. 짧은 글로는 공정성을 유지하기 어려워 ‘킬’ 판정을 받곤 한다. 부족한 지면에 넣을 수 없거나 신문에 소개할 필요가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 가십성 기사도 ‘킬’되기 일쑤다. 옛날에 기자들은 “일기장에나 써라”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도 통상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기사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을 편집국 분위기에 빗대 설명하면 대략 이렇다. 게이트 키핑의 사전적 의미는 뉴스 공급자가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쳐 어떤 정보는 ‘킬’되고 어떤 정보는 톱뉴스로 뉴스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그렇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뉴스가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저널리스트 훈련을 받은 기자가 수십년 동안 전문적인 영역에서 확보한 가치관, 이들이 모인 조직이 오랫동안 공유한 신념과 비전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공인 자격증이 없는 기자들이 신뢰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온라인뉴스 시대가 시작된 뒤 지금까지 사용했던 게이트 키핑이라는 개념도 바뀌기 시작했다. 일단 뉴스 공급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모호하다. 누구든 SNS를 통해 가치 있는 정보를 전파할 수 있다. 화재, 교통사고 또는 자연재해가 발생한 현장에서 이런 정보는 기존 언론사의 뉴스보다 훨씬 유용하다.

이는 보도시점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론에서 보도해야 뉴스’라는 거만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심지어 이 경우 기존 언론사의 게이트 키핑은 신속한 보도를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시스템에 불과하게 된다. 지난달 21일 중앙일보·jTBC 홍정도 대표는 ‘중앙미디어콘퍼런스’ 연설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가치 있는 정보”라고 선언했다. 기존의 게이트 키핑 시스템을 21세기 온라인뉴스 시대에 적합하게 수정·보완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우리나라 기존 언론사가 게이트 키핑 시스템 보완 여부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첫 사례일 것이다.

주관적 견해를 담은 기사나 지금까지 편집국의 관점에서라면 당연히 ‘킬’했을 개인적인 이야기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SNS와 온라인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사건들은 팩트와 의견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언론사가 기존의 판단기준에 묶여 이런 이야기들을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수십만명이 같은 주제를 곳곳에 퍼나르며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논쟁을 벌이는데 언론이 ‘이런 일이 있다’라는 기사조차 쓰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고 말할 수 없다. 여기서 게이트 키핑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게 무엇인지 혼란이 발생한다.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사회시스템의 변화를 기존 언론은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옛날에는 타협할 수 없었던 몇몇 원칙들도 뉴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완해야 한다.

고승욱 온라인뉴스부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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