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영석] 미래권력이 현재권력에 바란다

국민일보

[데스크시각-김영석] 미래권력이 현재권력에 바란다

지금 대한민국은 ‘3김 시대’가 아니다… 미래권력 장악 집착하면 화 부르는 법

입력 2015-10-0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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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이홍구·이인제·이수성·이한동·김덕룡·최형우·최병렬·박찬종.’

언론은 ‘9룡(九龍)’이라고 불렀다. 1997년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군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신한국당 차기 대선후보를 직접 낙점하려 했다. 특히 YS는 1995년 “깜짝 놀랄 만한 후보(이인제)가 있다”며 대선 링에 뛰어들었다. YS와 사사건건 부딪힌 이는 선두권에 있던 이회창 전 총재였다. YS는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전 총재는 “비민주적인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고 되받았다.

YS는 여당 선거유세장에서 자신의 인형이 화형당하는 ‘식물대통령’이 된 뒤 탈당해야만 했다. YS는 ‘9룡 체제’라는 새로운 대선 관리 모델을 만들었지만 미래권력 창출은 실패했다.

같은 보수정권인 이명박(MB) 전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MB는 2010년 ‘YS의 이인제’처럼 40대 김태호 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박근혜 대세론’이 팽배하던 시절이다. ‘김문수·정몽준·정운찬·이재오·임태희·김혁규·김태호·원희룡’ 등을 앞세워 YS처럼 ‘다룡(多龍) 체제’를 노렸다. 그리고 실패했다.

‘9룡 체제’ 이후 18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도 그때와 닮아 있다. ‘김무성·김문수·유승민·오세훈·남경필·원희룡·김태호 그리고 반기문·최경환.’ 후보군만 놓고 보면 ‘신(新) 9룡 체제’로 불릴 만하다. 갈등 모양새도 닮아 있다. ‘이인제·김태호’와 같은 구원투수도 전격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3박4일간의 뉴욕 출장 기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7차례나 만났다. 국내에선 친박계 의원들이 ‘우리도 후보 있다’며 ‘반기문 대안론’을 설파했다. 여야를 통틀어 차기 대선 후보 1위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왔다. 이를 방증하듯 박 대통령 귀국 직후 청와대는 안심번호 국민공천 카드를 꺼낸 김 대표를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내치던 때를 연상케 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여당 대표를 공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은 점이 다르다.

총선을 통해 친박 그룹을 키워 현실 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권 후보 선발까지 간여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런 탓에 야당 대표가 집권 3년차에 불과한 대통령을 향해 탈당과 당적 이탈을 요구할 정도다.

정치사적으로 볼 때 여권 2인자의 힘이 커질수록 대통령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후보군이 늘어나면 분할 통치를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미래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든다. 국정 장악력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도 함께다. 다자경쟁체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YS도 MB도 성공하지 못했다. ‘퇴임 후 연착륙’ 시도는 항상 2인자와의 갈등만 초래했고 미래권력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총재’였던 ‘3김(金) 시대’가 아니다. 현 대통령은 새누리당 평당원이다. 청와대가 여야 협상과 집권 여당의 당무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여권과의 물밑 간접 대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신9룡’들의 경쟁은 바람직하다. 청와대가 경쟁의 틀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건 역풍을 초래할 뿐이다. ‘신9룡’들은 현재권력에게 ‘우리 그냥 사랑하게, 아니 그냥 우리끼리 싸우게 해주세요’라고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현재권력이 무리하게 미래권력에 집착하면 화를 부를 수 있다. 그 순간 민심은 현재권력에서 멀어진다.

김영석 정치부장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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