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테러에 적극 대응하되 편견은 경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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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 칼럼] 테러에 적극 대응하되 편견은 경계를

“이슬람의 광신적 호전성 강조해 은연중에 테러리스트와 모슬렘을 등치시켜 와”

입력 2015-11-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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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동시다발 테러 직후 SNS를 타고 비판 여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일부 네티즌들은 프랑스 삼색기를 연상하게 하는 청·백·적색이 필터로 적용된 임시 프로필을 달았다. 남산타워도 삼색기 색으로 바꿔 공감에 동참했다.

이어 삼색기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파리 테러 직전 레바논에서 벌어진 IS 테러에 대해, 아니 그 이전 리비아 나이지리아 등에서 벌어진 테러에 대해서는 잠잠하다가 유럽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만 왜 유독 관심을 쏟느냐는 것이었다.

삼색기 필터가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테러 비판은 언제 어디서든 누가 피해자가 됐든 같아야 한다고 본다. 테러는 반인류적 범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테러를 보는 관점에서 서구중심주의, 이른바 오리엔털리즘에 치우쳐 있다면 큰 문제다. 이는 앞으로 테러 해결에 있어서도 큰 장애가 될 터다.

이슬람 과격집단에 의한 테러가 이어지면서 모슬렘(이슬람교도)에 대한 폄하와 편견이 확산되고 있다. 예컨대 오래전부터 이슬람을 설명하는 말로 흔히 쓰여 온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코란’은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라는 게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슬람의 광신적 호전성을 강조함으로써 은연중에 테러리스트와 모슬렘을 등치시켜 왔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서구에서 이슬람에 대한 반감은 대단히 뿌리가 깊다.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하고 중동·북아프리카에서 등장한 이슬람 제국은 711년 이베리아반도 정복에 나섰다.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레콩키스타(Reconquista·실지회복운동)가 벌어졌고 스페인의 탄생과 더불어 반도 내 마지막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가 1492년 함락될 때까지 이어졌다.

또 11∼13세기 십자군운동으로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의 대립도 있었다. 물론 십자군전쟁은 기독교권 이권 다툼의 성격이 더 강하다. 이어 근대화를 먼저 이룬 서구는 18세기 이후 중동지역을 식민지로 삼았고 천년 넘게 계속된 대립은 서구의 일방적인 승리로 돌아갔다. 서구가 중동세계를 폄하해온 배경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역사가 있다. 유럽이 암울한 중세에서 벗어나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된 배경에는 이슬람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스·로마(고전·고대) 문명의 계승자는 이슬람세계였으며 르네상스 인문·자연과학의 원천도 그곳이었다. 르네상스를 고전·고대의 부활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슬람세계를 통한 문명의 재현을 말하기 때문이다.

다만 뿌리 깊은 서구의 이슬람 폄하주의 내지 오리엔털리즘은 냉전 이후에도 여전히 주류적 가치를 이루고 있다.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1996)에서 탈냉전으로 이데올로기 대립은 끝났으나 새로운 대립은 문명 간, 특히 문명의 핵심을 이루는 종교 간 갈등이라고 주장했다. 겉모습만 보면 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지금의 갈등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IS를 둘러싸고 주변국들과 서구 각국 간의 이해관계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컨대 1980∼88년 이란·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지했던 서구 각국은 2003년 후세인 제거로 돌아섰었다. 프랑스만 해도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리아의 독재자 알 아사드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으나 테러 이후 정반대 입장이 됐다.

중동 상황은 서구의 이해관계라는 씨줄과 수니파와 시아파로 양분돼 온 종파 간 대립을 날줄로 삼아 무수히 변주돼 왔다. 여기에 금세기 들어 젊은 과격파 알카에다, IS 등이 새로 끼어들었다. 이들의 테러에 대응하는 것 이상으로 역내의 복잡한 대립구조를 풀어내지 못하면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지내는’ 평화는 회복될 수 없다. 편견·폄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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