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해웅] 위안부 합의의 국제법적 의미

국민일보

[기고-정해웅] 위안부 합의의 국제법적 의미

입력 2016-01-15 17:39 수정 2016-01-15 17:47

기사사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한 한·일 정부 간 합의가 이뤄져 지난달 28일 발표됐는데 이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적 의견의 핵심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합의라는 주장이다. ‘법적 책임’이라고 할 때 ‘법’은 어떤 법을 말하는가?

과거 위안부들에게 범죄행위를 저지른 행위자들을 한국이나 일본의 국내 법정 또는 국제 법정에 기소할 수 있다면 관련 국내법과 국제법에 의거해 형사·민사 책임을 물을 수 있겠으나 그러한 조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본에 대해 책임을 묻고 그 책임의 이행에 관한 합의를 이룬 것이다. 따라서 이번 합의와 관련된 ‘법적 책임’ 문제는 국제법을 근거로 따져야 한다.

국가기관이 국제위법행위(국제법 위반행위)를 저지르면 국가에 책임이 귀속되고, 국가는 책임 이행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제관습법이 형성되어 왔고, 이를 유엔 국제법위원회(ILC)가 정리해 ‘국제위법행위에 대한 국가 책임에 관한 규정 초안(ILC 초안)’으로 2001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됐다. 이번 합의의 내용을 분석해 ILC 초안에 정리된 국제관습법에 비추어 평가해보면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일본의 국가 책임에 관한 합의라고 할 수 있다.

첫째, 합의는 국제위법행위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는 표현은 위법행위라는 것을 의미하기에 충분하다. 이 표현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에서 빌려온 것으로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고노 담화에서 인정되었듯 위안부의 모집, 이송, 관리가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 의사에 반해 행해진 것은 ILC 초안에서 포괄적으로 말하는 국제위법행위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합의는 그런 위법행위를 저지른 행위자가 일본군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군의 관여 하에’라는 함축적 표현에 일본군이라는 국가기관이 국제위법행위의 주체였다는 의미는 충분히 나타나 있다. 셋째,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한 것은 일본군이 저지른 국제위법행위에 대한 책임이 일본국에 귀속됨을 확인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합의는 일본정부의 책임 이행에 해당하는 조치들을 명시하고 있다. ILC 초안은 국가 책임 이행 방법으로 사죄(satisfaction)와 금전 조치(compensation)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일본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거출하여…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시행’하기로 한 것은 국가 책임의 법적 이행 방법에 해당한다.

국제법에 의하면 일본군이 국제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확인되면 일본의 국가 책임이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지 일본이 국가 책임을 인정해야만 국가 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고 함으로써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합의를 통해 과거 일본군에 의한 국제위법행위가 있었음을 일본정부가 불가역적으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을 불가역적으로 이행하는 방법을 약속했다. 이것이 바로 국가 책임의 요체다. 국가 책임은 국제법이라는 법에 근거한 책임이므로 ‘법적’이라는 수식어가 없어도 당연히 법적 책임인 것이다.

정해웅(국제법협력대사·한국외대 외래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