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동훈] 끝나지 않은 희망고문

국민일보

[데스크시각-이동훈] 끝나지 않은 희망고문

노동개혁 4법 통과돼도 과제들 많아… 일자리 확충 돕는 공무원에게 인센티브를

입력 2016-02-2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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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 입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신조어는 희망고문일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벌써 17년 전인 1999년 한 가수 겸 기획자가 출간한 수필집에 처음 언급됐다고 하니 신조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원래는 남녀 사이에 ‘상대방에게 애매한 태도를 취해 자신을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에서 유래됐는데 요즘은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주어서 고통스럽게 한다는 뜻으로 범위가 확장됐다. 영어로까지 ‘giving false hope’ ‘vain hope’라고 번역돼 있어 단어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청년들에게 희망고문과 가장 실감나게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면 실업일 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펀드 이름에 희망이 담긴 ‘청년희망펀드’ 1호 가입자로 나서고 많은 대기업이 펀드에 가입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러나 그뿐, 희망고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노동시장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마련한 노동개혁 4법의 국회 처리가 차일피일 미뤄지자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국회를 성토하는 일이 벌어진다. 박 대통령은 24일에도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노동개혁 법안 처리 지연과 관련, “국회가 다 막아놓고 어떻게 국민한테 또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느냐”고 의원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여야가 노동개혁 법안 처리에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26일 본회의에서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키로 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하고 나면 정치권이 본격적인 선거 정국에 돌입하는 만큼 19대 국회에서 노동개혁법 처리는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듯하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이기권 장관 역시 틈만 나면 기자간담회를 열거나 경제부장 사회부장들에게도 문자나 전화를 넣어 ‘여론의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모 신문사 부장은 너무 자주 문자와 전화가 와 장관 휴대전화 번호를 ‘스팸’으로 등록해놨다는 ‘웃픈 소리’가 들릴 정도다. 정부가 노동개혁 입법에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여기서 아이러니는 여당의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청년희망기본법’(가칭) 제정을 제안하고 나선 점이다. 야당을 설득해 노동개혁 4법의 국회처리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청년들의 실업난 해소와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은 총선용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다. 이에 대해 청년희망고문법이라고 비아냥대고 있는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청년일자리고용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성토하고 있다. 명칭은 다를지언정 ‘도긴개긴’이다.

정부도 노동개혁 4법이 처리되면 청년들의 희망고문이 일거에 해소될 것처럼 말하고 있다. 법이 통과되더라도 노조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기성세대를 쉬운 해고로 내보내고 청년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할 세대간 갈등 확대도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할 것이다.

노동개혁법이 왜곡된 노동시장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해도 어차피 그 출발점은 한정된 파이를 나누는 수준 아닌가. 진정한 청년고용 창출은 기업 손에 달려 있다. 기업이 투자해야 일자리가 생긴다. 천문학적인 유보금이 쌓여 있어도 기업들은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수년째 망설이고 있다. 정부가 복지부동에서 벗어나 물심양면으로 도와줘야 한다. 대통령이 “정책추진 체계를 일자리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장기적으로 모든 정책에 대해 고용영향 평가를 실시하라”고 지시했듯이 여기서 더 나아가 투자 확대와 이에 따른 일자리 확충에 기여하는 공무원들에게 과감히 인센티브를 실시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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