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설탕세와 설탕중독

국민일보

[한마당-임항] 설탕세와 설탕중독

입력 2016-03-2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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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인과 무어인은 설탕을 한 조각씩 잘라내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먹어댔다. … 탐식에 길들여진 이들은 더 이상 예전의 용맹한 전사가 아니었다.” 독일의 식물학자 레온하르트 라우볼프가 술탄의 제국을 여행한 후 1573년 출간한 여행기의 한 대목이다. 설탕 남용의 해악을 경고한 첫 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 그가 그린 술탄 군대의 설탕 중독 현상은 월남전 때 미군의 헤로인·마리화나 중독과 매우 흡사하다.

콜라, 주스, 빵, 과자,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자장면과 심지어 담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무수한 음식에 설탕은 빠짐없이 들어 있다. 설탕은 강력한 중독성과 함께 비만 충치 우울증 치매 관상동맥혈전증 저혈당증 당뇨병 암 등 현대병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식품 가운데 인류의 건강에 이토록 큰 해악을 끼치면서도 규제를 가장 덜 받는 것이 아마 설탕일 것이다. 담배나 소금이 받는 규제나 푸대접과 비교해보라. 글로벌 식품 업체들은 설탕의 폐해를 체계적으로 은폐하고, 값싼 액상과당 남용으로 설탕 중독을 부추겨 시장을 확대해 왔다.

영국 정부가 내년부터 탄산음료에 설탕세, 또는 비만세를 부과키로 16일 결정했다. 헝가리 멕시코 프랑스 및 뉴욕 등 미국 일부 주가 탄산음료나 가공식품에 이미 세금을 물리고 있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달 말까지 제1차 당류 저감 종합계획을 수립하기로 했지만 설탕세 도입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하루 설탕 섭취량은 61.4g으로 100g에 육박하는 미국 멕시코 등에는 못 미치지만 세계보건기구(WHO) 권장치(25g)는 훨씬 웃돌고 있다. 콜라나 비타민워터 한 병(500㎖)에도 30g, 스타벅스의 화이트초콜릿 모카 한 잔에는 무려 70g의 설탕이 들어 있다. 담배에 붙는 막대한 세금을 감안할 때 설탕에도 세금을 물리는 게 마땅하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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