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병삼] 고놈 참 고약해(高若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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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김병삼] 고놈 참 고약해(高若海)!

세종은 직언 마다 않는 ‘고약해’를 중용… 고약한 사람의 말 들을 줄 알아야 지도자

입력 2016-05-2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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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실록에 등장하는 독특한 인물이 있다. 세종시대에 대사헌을 지냈던 ‘고약해(高若海)’라는 사람인데, 민간어원 학설에 의하면 흔히 사용하는 ‘그 사람 참 고약해’라는 문장에 등장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소설가 이문영씨가 연재한 ‘초록불의 역사 인물 이야기’에 보면 고약해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가 많이 나온다. 세종대왕은 격구(말을 타고 하는 공놀이)를 좋아했는데 한번은 고약해가 격구를 폐해야 한다고 고한 적이 있다. 격구는 군사훈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 놀이에 불과하니 국왕이 그런 놀이에 빠지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세종대왕은 그의 주장이 못마땅해 들어주지 않았고, 고약해는 시시때때로 격구 폐지를 주장했다고 전해진다. 처음 간언한 것이 세종 7년이었는데, 세종 12년에도 고약해가 격구 폐지 발언을 했다고 한다.

전해지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당시 불교를 숭배하던 왕실에 대한 직언이다. 불교 행사를 놓고 밀랍으로 만든 초를 사용하느냐로 논쟁을 할 때 고약해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불교는 성인(공자)의 법이 아니니 없애야 하는 겁니다. 어찌 해서 밀랍이니 기름이니 하는 것을 논의하십니까?” 세종이 선대적부터 내려온 것이라며 주저할 때 고약해는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옳은 도리가 아니면 빨리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지만 왕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심기를 건드리는 직언을 곱게 보았을 리 없다.

그러나 이런 고약해를 세종은 대사헌을 거쳐 호조참판의 자리까지 등용한다. 말을 듣지 않는 신하를 보면 세종은 “이런 고약해 같은 놈이 있나!”라고 했다고 하니, 둘의 관계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고약해를 등용한 세종이 위대한 인물인가? 아니면 끝까지 직언을 멈추지 않았던 고약해가 위대한 인물인가?

북이스라엘 왕조에서 가장 악한 왕 중에 하나가 아합이다. 그런데 그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활동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참 고약한 인물이었고, 늘 경계와 경원의 대상이었다.

통일 이스라엘 왕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록되는 다윗 시대에는 선지자 나단이 있었다. 나단에 대한 기록은 엘리야와 비교하면 아주 짧게 나온다. 바로 간음과 살인죄를 지었던 위대한 왕 다윗의 죄를 지적할 때이다. 나단 선지자는 엘리야의 위대함에 견줄 수 없는 인물이었지만, 다윗은 그의 책망을 듣고 회개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기억될 수 있었다. 고약한 사람을 가까이 두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이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걱정은 지도자 주변에 ‘고약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실체를 알 수는 없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자 주변에 있다고 알려진 인물들이 고약한 사람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리더는 자신이 가장 지혜로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위대한 리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자신보다 더 잘하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잠언 12장 15절에 보면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고 되어 있다. 고약한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지혜롭고 위대한 초인(超人)을 기다리며 함석헌옹의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시가 생각난다. 그리고 이 시대를 이끌고, 앞으로 이끌어가기를 원하는 정치 지도자에게 묻고 싶다. “그대, 고약해 같은 사람을 가졌는가?” 그렇다면 세종과 같은 성군이 될 것이다.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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