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태경] 범죄 피해자 적극 보살펴야

국민일보

[기고-김태경] 범죄 피해자 적극 보살펴야

입력 2016-07-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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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남역 살인사건’을 접하며 ‘이 소식에 많은 피해자가 또 한번 고비를 겪겠구나’ 생각이 들어 마음이 바빠졌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 심리지원 중이던 살인사건 유가족에게서 긴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강남역에서 사람이 죽었다네요… 세 번째 기일이 다가오지만 아직도 내 가족이 살인사건으로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이제 막 일을 당한 가족은 어찌 살아낼까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이 힘들어요.”

피해자와 가족에게 범죄사건은 오랫동안 ‘현재진행형’으로 경험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의 기억이 더욱 또렷해지는 경우도 있다. 어머니가 눈앞에서 칼에 찔려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했던 요리사는 사건 후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칼은 요리 도구가 아니라 어머니 피살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칼에 대한 공포는 ‘내가 손에 든 칼로 누군가를 다치게 할지 모른다’는 강박적 사고로 바뀌었다. 이후 범죄 피해자 심리지원기관인 서울스마일센터의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받은 지 2년이 지났고, 최근 가족을 위해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범죄 피해자가 된다는 것. 피해자들은 ‘삶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폭행 강간 강도 심지어 사소하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한 시비나 위협조차 피해자의 마음과 몸 그리고 영혼을 산산조각 나게 한다. 개인에 따라 증상의 심각도와 유형에 차이는 있어도 사건이 다시 일어나는 것 같은 재경험, 공황 발작을 포함한 불안,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등의 생리적 과각성, 사건과 관련된 반복적 악몽,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 기억상실에 이르는 해리증상 등을 경험한다.

사건 직후에는 심리적 후유증을 별로 드러내지 않다가 일상에 복귀한 뒤 갑자기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유괴범에게 납치돼 48시간을 자동차 트렁크에 갇혀 있다 구출된 소녀는 사건 직후 예전처럼 밝고 명랑한 모습이었으나 3개월 뒤 갑자기 응급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초기에 적절한 심리지원을 받지 못했을수록, 사법 절차에 많이 관여할수록, 죄책감이 클수록, 사회적 낙인이 심할수록, 사회적 지지망이 빈약할수록, 그리고 현실적 어려움(예를 들어 경제적 어려움)이 심각할수록 자신 및 세상에 대한 안전감 회복이 느리거나 아예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범죄 피해자는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인다. 특별한 보호와 지원이 절실해진다. 특히 강력범죄 피해자의 심리적 손상은 매우 심각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법무부는 2010년부터 살인·강도·강간·폭행·방화 등 강력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서울 등 전국 8개 지역에서 통합심리지원 전문기관 ‘스마일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임상심리 전문가 등 심리치료 전문 인력이 사건 직후부터 개입해 피해자의 개별 상황에 맞게 지원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피해자의 연령·성별에 관계없이 무료로, 완전히 회복되는 시점까지 장기적으로 제공된다.

범죄 피해자의 정신적 후유증에 시간은 약이 되지 못한다. 방치할 경우 과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상처가 곪아 터질 수 있다. 피해자가 자기 때문이라는 자책감이나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한 믿음을 조금씩 되찾도록 돕는 것은 사회의 건강성 회복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김태경(우석대 교수·상담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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