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김영란법과 한정식집 ‘유정’

국민일보

[한마당-정진영] 김영란법과 한정식집 ‘유정’

입력 2016-07-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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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한정식집의 폐업 소식이 잇따라 언론을 탔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유정’이 60년 만에 문을 닫고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바뀐다는 내용이다. 갈수록 손님이 줄어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주인은 말했다. 이번 주말부터 공사를 해 9월에 새로 문을 연다고 한다.

젊은 기자들은 낯설 수 있겠지만 한정식집은 한때 기자들이 자주 갔던 곳이다. 고위 관료, 정치인은 물론 기업인도 그곳에서 기자를 만나는 경우가 잦았다. 식사 공간이 테이블이 아니라 모두 방이어서 노출되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접대부가 있는 요정과 달리 대부분 한정식집은 한식 위주의 식사와 안주에 반주를 곁들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한정식집은 정부 서울 청사와 청와대 부근, 국세청이 있는 수송동과 인근의 인사동에 주로 몰려 있다.

유정은 다른 한정식집보다 한 단계 격이 높았다고 할까. 역대 대통령 등 최고위 공직자들이 찾던 곳이었기 때문인지 대체로 중앙부처 1급 정도는 되는 공무원들이 주 고객이었다. 적어도 내 경험상 그랬다. 유정은 방이 몇 개 되지 않아 조용하고 편안했다. 고춧가루 없이 버무린 콩나물 무침과 갈비찜이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한정식집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주요 부처 공무원들이 세종시로 많이 옮겨가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데 이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오는 9월 28일 시행되면 결정타가 될 듯하다. 유정 폐업은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많다. 고급 한정식집은 대체로 점심과 저녁이 각각 3만원과 5만원 안팎이어서 김영란법에 규정된 식사비(1회) 3만원을 초과한다.

김영란법의 위력은 이미 작동 중이다. 대기업 임원인 친구는 “법 시행 이후 기자와의 골프 약속은 전부 취소하라는 게 회사 방침”이라고 했다.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제법 있는 것 같다. 적용 대상이 400만명이나 되는 이 법의 후폭풍은 엄청나다. ‘부정부패를 막겠다’는데 누가 입을 뻥긋하겠나. 딴죽을 거는 것은 부패에 동의하는 낙인이다. 상식적 소통까지 막아서 되겠느냐고 항변하고 싶지만 감히 그럴수 없다.

정진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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