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남중] 페미니즘, 여혐, 미러링

국민일보

[세상만사-김남중] 페미니즘, 여혐, 미러링

20대 여성이 주도하는 올해 페미니즘 열풍… 직설적 실생활 언어로 전선 확대돼 논쟁적

입력 2016-09-22 17:37 수정 2016-09-2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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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2016년의 단어가 될까. 한물간 얘기 취급을 받던 페미니즘이 올해 갑자기 뜨거워졌다. 어떤 주제든 페미니즘이 개입하는 순간 불이 붙고 만다.

서점가에는 페미니즘 책 판매가 이례적일 정도로 늘고 있고, 전국 곳곳에서 페미니즘 강좌와 공부 모임이 열리고 있다. 이념갈등, 세대갈등으로 치고받던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의 요즘 최고 이슈는 단연 남녀갈등이다.

1년 전, 아니 반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이렇게 뜨거워질 거라고 예상하긴 어려웠다. 페미니즘 책들이 관심을 받는 것을 보면서 ‘혹시 페미니즘이 다시 살아나는가?’ 생각해볼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페미니즘의 귀환은 명백해 보인다. ‘귀환’이라고 하는 이유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페미니즘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페미니즘 바람은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페미니즘이 대중화된 순간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꽤 장기적이었다. 하지만 아카데믹한 측면이 강했다. 여성학자들이 주도하고 학생들이 따라가는 모양새였으며, 대학이라는 공간에 한정된 현상이었고, 교양이라는 측면에서 페미니즘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와 비교할 때 올해 재연된 페미니즘 열풍은 몇 가지 차이를 보인다. 20대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우선 발견된다. 이들은 ‘일상생활의 매뉴얼’ ‘대화기술’ 또는 ‘마음을 지키는 호신술’ 등으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어렵고 학술적인 용어가 아니라 쉽고 직설적인 실생활 언어로 ‘젊은 페미니즘’을 구축하는 중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게 있다. 이전의 페미니즘이 성폭력과 성차별을 주된 문제로 삼았다면, 이 시대 페미니즘의 초점은 ‘여성혐오’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여성적 문화와 언어, 뉘앙스, 분위기 등을 여성혐오로 규정하고 이를 문제화한다. 전선이 무척 넓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러링’이 있다.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사용해온 비하, 차별, 혐오 등의 표현을 여성들이 남성들을 비판할 때 마치 거울로 빛을 반사하듯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다. 불쾌하고 때론 비윤리적일 수도 있다. ‘되받아치기’라고도 말해지는 미러링은 한국의 여성주의 역사에서 처음 구사되는 전략이다. 메갈리아, 워마드 등 일부 페미니즘 그룹에서 선호하는 이 전략은 특히 논쟁적이다.

20대, 혐오, 미러링은 동시대 페미니즘의 특징을 이루며, 지금 페미니즘이 왜 이렇게 뜨거운지를 설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현재의 페미니즘 논쟁이 감정싸움 수준에서 종종 교착되거나 표류하는 이유도 여기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커지자 몇몇 과도한 표현이나 오해, 오류 등을 지적하면서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목소리도 같이 커졌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하나의 고정된 ‘생각’이 아니라 다양한 수준과 갈래를 가지고 진화하는 ‘생각들’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부분적 비판은 가능하되, 그것이 페미니즘 전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건 명확하다.

올해 가장 많이 팔린 페미니즘 책 중 하나인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저자 록산 게이는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2016년 한국 페미니즘이 좀 서툴면 어떤가. 다소 불완전하면 어떤가. 페미니즘이 없는 것보단 낫다.

김남중 문화팀 차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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