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크리노’

국민일보

[바이블시론-지형은] ‘크리노’

감시 부실하면 야만이 사회 지배… 교회가 복음적 비평 기능 감당해야

입력 2016-12-0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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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장 1∼3절이다. 예수님의 산상설교에 있는 가르침이다. 누가복음에 이 내용의 병행구절이 있다. 6장 37절인데 내용은 같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그리스도인 중에서 이런 말씀을 근거로 들면서 남을 비판하는 것이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 상황과 연관해 남의 허물을 끌어안고 기도할 때이지 비판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이 깊고 경건한 사람들 중에 아주 진지하게 이런 확신을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연 그런가. 이런 구절이 어떤 종류든 남에 대한 비판 자체를 금지하고 있는 것일까.

신약성경의 원어는 헬라어다. 위의 구절에서 ‘비판하다’의 헬라어는 크리노(krino)다. 경우에 따라 뉘앙스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위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내리는 판결이나 심판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의 비판은 하나님의 최종 심판과 동의어가 된다. 비판과 연관하여 잘 알려진 다른 본문 로마서 2장 1∼3절에 이 점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여기에 나오는 ‘판단하다’는 단어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비판하다처럼 헬라어는 ‘크리노’다. 자신이 하나님인 양 착각하고 남을 확정하여 심판해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대 앞에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크리노가 최후의 심판과 연관된다는 맥락은 위에서 인용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복음서의 수동형 문장에서 숨은 주어는 하나님이다. 인용한 누가복음에서 숨은 주어를 살리면 이렇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최후의 심판에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비판하지 않으실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정죄하지 않으실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다른 사람을 확정하여 심판하면 안 된다. 그건 하나님의 권한이다. 그러나 이런 성경 말씀이 모든 종류의 비판이나 비평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살면서 끊임없이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판단한다. 특히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는 건강한 사회 비평이 필수적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기능이 약해지면 독재가 들어선다. 언론, 지식인 집단, 시민단체, 법조계 등의 비평과 감시 기능이 부실해지는 만큼 야만이 사회를 지배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구조인 견제와 균형이 비판력으로서 작동된다. 특히 종교는 진리라는 가장 근본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비평한다.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는 성경 구절이 이사야서 56장 10절이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연관해 복음적 비평 기능을 제대로 감당해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가 걸어갈 중장기적인 방향과 연관해 성서의 가치관으로 거침없이 비평해야 한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