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채수일] 헤롯왕 vs 아기 예수

국민일보

[바이블시론-채수일] 헤롯왕 vs 아기 예수

헤롯 자신과 측근만 배 불린 나라 망해… 백성 먹이며 공의 실천한 예수의 통치

입력 2017-01-1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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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입니다. 유대 왕이자 당대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가 동방에서 온 현자들에게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당황했다는 것은. 더욱 이상한 것은 그러면서도 새 왕이 태어난 곳을 찾아 나선 동방에서 온 현자들에게 사복 경찰이나 정보원을 미행시키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거나 자신의 절대 권력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러나 유대인의 새로운 왕이 출현했다는 것에 당황한 것은 헤롯왕만이 아니었습니다.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했다고 합니다. 물론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누구보다 율법에 정통하고, 바벨론 포로기 이후 계속된 이민족의 지배 아래 살면서 강화된 메시아 대망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터니까요.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동방에서 온 현자들이 헤롯왕에게 가서 물었다는 것입니다. 헤롯왕의 악명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을 텐데 그를 대체할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것이 헤롯의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들은 헤롯에게 갔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알려진 대로 헤롯왕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기 아들들은 물론 아내와 처남들도 처형한 잔인한 독재자였습니다. 자기 죽음이 다가왔을 때도 자기를 위해 애도할 백성이 없다는 것을 예감하고 많은 유대인 지도자를 동시에 처형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애도에 무임승차하려고까지 계획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현자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아기 예수를 경배한 후 다른 길로 돌아가자 속은 것에 격분하여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습니다.

사람의 피를 먹고 사는 것은 돈 만이 아닙니다. 권력도 사람의 피를 먹고 유지됩니다. 권력 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되는 미래 권력의 도전은 그 싹부터 잘라야 한다는 헤롯의 생각이 참혹한 유아 학살을 초래한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과 동방박사의 경배, 헤롯왕의 반응은 오직 마태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마태복음 기자의 매우 의식적인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마태는 절대 권력을 가진 헤롯왕과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갓난아기 예수님을,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과 동방에서 온 현자들을 대립시킨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율법 교사들은 책(예언서)으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날지 알았지만 동방에서 온 현자들은 별(자연)을 보고 알았습니다.

누구보다 메시아를 기다려야 할, 백성들에게 메시아의 탄생을 가장 먼저 알려야 하는 종교지도자들은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날지는 알았지만 어떤 분으로 올지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알량한 기득권을 향유하면서 기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방인인 동방에서 온 현자들이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구유 안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로 태어나셨다는 것을 알고 또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책이 아니라 자연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깨닫는 이들에게 허락된 은총입니다.

놀라운 것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통치자가 주님의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는 말씀은 ‘먹일 것’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미가 5:4). 메시아의 통치는 넓은 의미에서 공의와 사랑의 통치를, 구체적으로는 백성을 배부르게 ‘먹이는 것’입니다. 백성의 먹을 것을 염려하지 않고, 배고픈 백성을 배부르게 먹이지 못하거나 않으면서, 자신의 배만 채우는 지도자, 온갖 특혜로 측근과 비선 실세들의 배만 불리면서 충성경쟁을 시키는 통치자가 있는 나라는 결국 헤롯처럼 망합니다.

채수일 경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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