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혼주들에게

국민일보

[청사초롱-손수호] 혼주들에게

부모가 주례석에 서는 것은 난센스… 하객이 환대 받은 느낌 가져야 좋은 혼례

입력 2017-03-28 17:38 수정 2017-03-2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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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의 계절이 왔다. 탄핵 중에도 사랑을 키우고, 불황 중에도 결혼은 이어지고, 전쟁 중에도 아이가 태어난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유구하다. 혼례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해도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봄이 제격이다. 지난주에는 하루에 두 번 초대를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식당으로 직행하지 않고 식장 분위기를 보는 편이다.

근래 들어 가장 인상 깊었던 결혼식은 K선배 아들의 경우였다. 한국인 신랑, 프랑스인 신부 커플이라 형식이 궁금했는데, 전체적으로 한국의 예식을 따랐다. 양가 부모가 식장 앞에서 손님을 맞고, 주례를 세우고, 행진을 하고, 케이크 자르면서 백포도주 마시는 모습을 재현했다. 속지주의를 적용한 때문인지 축의금 받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축하 순서 때 나왔다. 한국 쪽에서는 시인이 등장했다. 신랑 아버지의 친구인 그는 신랑의 개구쟁이 시절을 추억하고 부부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축시를 선물했다. 프랑스 쪽에서는 무려 3명이 글을 읽었다. 할머니와 여동생이 축하 편지를 낭독했고, 마지막으로 유모가 일어나 신부의 요람 시절을 되새기며 행복을 기원했다. 신부의 눈에 영롱한 눈물이 맺혔다. 박수가 길게 이어졌다.

불쾌한 결혼식도 있었다. 요즘 자주 보듯,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는데, 사회자가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다 보니 진행이 뒤죽박죽이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축하 퍼포먼스였다. 한 젊은이가 나와 웃통을 벗어젖히더니 음악에 맞춰 런웨이를 오가며 문신 가득한 상반신과 울퉁불퉁한 근육을 보여주었다. 눈길 둘 곳을 찾지 못해 민망했다. 가창력이 따라 주지 않는 친구들의 축가도 듣기에 거북했다.

나중에 혼주에게 물으니 본인도 당황했다고 한다. 신랑신부가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일임하다 보니 어떤 식으로 예식을 꾸미는지 미리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연애는 두 사람의 약속이고, 약혼은 가족 간의 행사지만, 결혼은 만인에게 공개하는 의례인데도 결혼식을 신랑신부의 행사로 여기면 장난스러운 이벤트로 전락하고 만다.

혼례가 집안 잔치가 되려면 혼주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혼주는 혼사를 주재하는 사람이다. 경제적 지원 규모에 따라 개입할 수 있는 폭이나 발언권이 정해진다고 생각하면 그저 철부지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다. 결혼식은 우리 윗대가 그랬던 것처럼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보편의 격을 갖추면 된다. 이런 상식을 깨고 혼인 당사자의 뜻대로 치르고 싶으면 당사자들의 행사로 끝내라. 신랑신부의 행사로 꾸며놓고 혼주의 친지를 초대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혼주가 주례로 나서는 것도 난센스다. 주례 없는 결혼식은 번잡하지 않은 장점이 있는데, 혼주가 단상에 올라 주례사 비슷한 내용을 설파할 때는 난감하다. 아들과 며느리, 사위와 딸에게 할 말이 있으면 결혼 승낙 때 혹은 신혼여행 다녀와서 들려주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많은 하객 앞에서 훈계를 하는 것은 오줄없는 행동이다. 목회자가 예식을 집전할 때는 그 장소가 종교시설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게 좋다. 물론 내 친구 중에도 혼주 신분으로 색소폰을 연주한 사례가 있다. 자식의 앞날을 축하하고 하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고 인사했다. 그러나 무릇 혼주는 겸손해야 한다.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모시는 일에 모든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의례(ritual)는 한 시대의 정신문화를 압축한다. 더욱이 혼례는 집안의 문양과 품위를 드러낸다. 장소나 음식이 아니라 하객을 대하는 태도가 그날의 기억을 좌우하므로 신랑신부나 혼주의 취향에 앞서 하객의 다양한 층위를 배려해야 한다. 그날, 모든 이가 환대 받았다는 느낌을 가졌다면 썩 잘된 결혼식이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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