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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칼럼] 우리는 왜 갈라져 싸우기만 하는 걸까

“노력했는데 못했다면 원인 다른 데 있어… 다름을 적대시하는 데서 분열은 시작돼”

입력 2017-04-0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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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만난 친구는 건강해 보였다. 여객기 조종사로 일한 지 20년이 다 돼 간다. 국내 항공사에서 근무하다 일본 항공사로 옮겨 3∼4년 비행했고 지금은 중국 항공사에 몸담고 있다. 아이 학교 때문에 가족은 도쿄에 사는데 자신은 주로 베이징에 머문다. 형제와 친지는 서울에 있어서 세 나라를 오가는 ‘동북아 생활자’가 됐다.

미세먼지에 갇혔던 서울이 모처럼 파란 하늘을 보인 날이었다. 한·중·일 하늘 길을 다니다보니 공기 차이를 절감한 모양이다. 도쿄 공기는 서울보다 딱 2배 깨끗하고, 베이징은 산악지대에서 서풍이 불어오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을 때는 공업지대 먼지가 올라온단다. 비행기는 먼지보다 높은 하늘을 난다. 조종석에서 내려다보면 베이징을 향해 스멀스멀 몰려가는 먼지 모습이 공연무대에서 드라이아이스로 연기를 뿜는 것 같다고 했다.

중국 항공사로 옮긴 것은 처우가 좋아서였다. 중국은 많은 자본을 들여 외국인 조종사를 스카우트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중국인 조종사의 건강 문제다. 아직 술·담배에 관대한 문화, 그리고 물이 원인이었다. 수돗물에 석회 성분이 많아 생수를 마셔야 하는데 음식점에선 수돗물로 요리한 음식을 먹게 된다. 그 영향이 누적돼 중년을 넘어서면 신장결석 등 장거리 비행에 부적합한 몸 상태가 되기 쉽다는 거였다.

일본 항공사는 60대 조종사가 수두룩하고 중국은 55세를 넘긴 조종사가 드문데, 여기서도 한국은 두 나라의 중간쯤 된다고 했다. 한·중·일을 오가는 친구와 세 나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익숙한 패턴이 되풀이됐다. “한국 카센터에선 ‘이 부품 바꾸라’는 얘기를 주로 듣지만 일본에선 ‘이건 다음에 바꿔도 된다’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는 경험담이 “중국 남부는 운전이 거칠어 한국 사람이 핸들 잡기 어렵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화제마다 일본엔 뒤졌지만 중국보단 조금 앞선 지점에 한국이 있었는데, 이 패턴이 깨진 것은 사드 얘기가 나왔을 때였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항공 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인 조종사와 승무원을 대거 선발하던 중국 항공사들이 이를 중단했다. 특히 한국인 승무원은 중국 승객에게 인기가 많아 한꺼번에 100명씩 뽑곤 했는데 지금은 뚝 끊겼다고 한다.

그토록 일사불란하게 정부 방침에 따르는 이유를 그는 “위에서 틀어쥐고 가니까”라고 표현했다. 중국은 전체주의 국가답게 권력의 입김이 구석구석 미치니 뭐가 됐든 한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일본은 방향을 정해 몰고 가는 게 국민이라고 보고 있었다. 정치를 못마땅해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묘한 민족성과 시민의식이 국론 분열의 상태를 만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중간에 놓이지 못했다. 결국 이런 말이 나오고 말았다. “우리는 왜 갈라져 싸우기만 하는 걸까.” 오랜 외국생활에서 친구가 느낀 한국인의 강점은 성실함이었다. 한국인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단다. 그런 이들이 모인 나라가 남들은 5∼6년이면 넘어서는 1인당 소득 3만 달러의 벽 앞에 11년째 주저앉아 있다. 누구보다 열심인데 못했다면 원인은 노력이 아닌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한국이 두 나라 중간에 놓이지 못하는 유일한 문제, 분열의 극복에 있지 않을까.

다른 목소리가 존재하고 경쟁하는 건 사회가 건강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다른 목소리를 ‘틀렸다’며 적대시하는 데서 분열은 시작된다. 지금 대통령을 뽑는 것보다 중요한 건 선거에 내재된 분열의 씨앗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마침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정의로운 통합’을 말했다.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었으면 한다.

태원준 온라인뉴스부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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