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안보를 정치 도구화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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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동 칼럼] 안보를 정치 도구화 하지 말라

“안보의 결핍도 문제이지만 안보의 과잉, 정치 도구화는 더 위험한 자해행위다”

입력 2017-04-1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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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안보 위기론이 모든 걸 삼킬 태세다. 전쟁설까지 나돈다. 정부가 “사실과 다르다”며 위기론을 잠재우려 하지만 쉽지 않다. 회사 동료는 “미국 친척으로부터 ‘빨리 한국을 떠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밖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급박한데도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국민은 정부를 믿지 않으려 한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이러니 안보 이슈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상황이다. 대선 후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안보를 강조한다.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者)로서 안보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욱이 4월 위기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니 이해된다. 하지만 선거용이라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안보의 과잉이고, 정치 도구화(化)다.

대선 후보들의 ‘안보 장사’는 애처로움을 넘어 눈물겹다. 문재인 후보는 특전사 제복을 통해 ‘안보 대통령’임을 강조한다. 안보를 앞세운 경쟁자 공격을 안보로 방어한다. 한데 특전사 출신이라는 것이 안보관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강력한 사드 반대론자였던 안철수 후보는 슬그머니 사드 찬성론자로 변신했다. 생각과 정책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안 후보의 안보관이 의심받는 이유다. 홍준표 후보는 아예 ‘안보’밖에 보이지 않는다. 모두 안보라고 쓰고 표라고 읽는다는 의문이 제기된다.

박근혜정부에서 문화의 도구화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봤다. 마찬가지로 안보가 도구화될 때 그 결과는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근거 없이 상대방의 안보관을 공격하는 것도, 무턱대고 자신의 안보관을 내세우는 것 모두 위험하다. 얼마 전 열렸던 대선 후보 5자 토론에서도 안보문제는 주요 이슈였으나 질문과 답변 수준을 보면 한편의 개그였다. 마구잡이로 내지르고 동문서답하고. 그야말로 안보의 도구화였다.

도구화된 안보는 종종 우리에게 전쟁인가, 평화인가를 묻는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다 선택적 강요이자 편 가르기다. 답은 뻔하다. 평화다. 전쟁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기 거래상을 빼면 말이다. 힘의 균형이 이뤄지면 전쟁을 일으키기 쉽지 않다. 상대를 죽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스스로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두려워하면 오히려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역설이 통하는 이유다. 전쟁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냉혹한 국제질서이자 현실적 딜레마다. 영세중립국 스위스가 잘 말해준다.

스위스가 영세중립국 지위를 얻게 된 역사적 과정이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강대국 틈바구니에서도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것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웠기 때문이다.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이면서도 해군을 유지할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이처럼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헌신과 희생 없는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전쟁만큼이나 비용도 만만찮게 든다. 전쟁 역시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힘이 약하고 분열이 심화될 때 전쟁은 내부에서 잉태된다. 역사적으로 경험한 바다.

안보 위기론을 거론하면 보수 꼴통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진보 세력의 오래된 프레임이다. 보수 세력에 원죄가 있지만 안보 위기론 자체를 틀렸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지금이 딱 그렇다. 반대로 보수 세력은 진보에 종북의 굴레를 씌워왔다. 북한을 민족적 관점에서 감성적으로만 이해하고 내재적 방법으로 접근해온 진보 세력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기본적으로는 레드 콤플렉스를 이용한 보수의 안보 장사다. 안보의 결핍도 잘못이지만 안보의 과잉도 문제다. 김정은 정권의 호전성과 핵 개발 속도, 수준을 감안하면 안보의 도구화는 자해행위다.

박현동 논설위원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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