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동아시아의 지평 중시하는 후보 뽑자

국민일보

[조용래 칼럼] 동아시아의 지평 중시하는 후보 뽑자

“섣부른 낙관론과 안이하고 순진한 자국우월주의는 우리를 무기력하게 할 뿐”

입력 2017-04-23 18:57
취재대행소왱

기사사진

5년 전 나는 개발연대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매섭게 비판한 유인호(1929∼92) 교수의 삶과 학문에 대한 책 ‘유인호평전-사회변혁을 꿈꾼 민중경제학자의 삶-’을 썼다. 집필과정에서 그의 경제기본권 주장과 동아시아의 지평을 중시해야 한다는 자세에 크게 공감했다.

그는 유신정권이 무너지던 79년부터 헌법에 경제기본권 7개 규정을 명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7개 규정은 부정한 방법의 재산취득 방지, 경제 질서 수립, 사회적 약자 보호, 근로자·농어민·소상품생산자 권리 보장, 경제력 집중 방지, 노동권 및 환경권 보장이다. 경제민주화론의 원조 격인데 요즘 거론되는 것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다.

동아시아의 지평은 한국자본주의사 연구의 대상 및 접근방법을 말한다. 한국을 똑바로 이해하자면 한반도 주변을 늘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이른 죽음 탓에 한국자본주의사 연구는 미완으로 끝났지만 방법론으로서 동아시아의 지평은 시사하는 바 크다.

사실 동아시아의 지평은 학문의 영역 외에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세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이나 인접국과의 역사·문화적 관계를 감안할 때 동아시아의 변화와 흐름은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주제다. 한국을 결정짓는 외적 요인에 대한 인식 없이는 한국·한국인의 존재감을 주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유 교수가 제기한 두 가지 공감의제는 우리 사회에 아직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경제의 민주화’란 말이 헌법(119조2항)에 실려 있을 뿐 구체적인 적용은 여전히 논란만 무성하다. 대부분 국내 이슈에 전전긍긍할 뿐 동아시아의 지평과 관련해서는 밑도 끝도 없는 안이한 낙관론과 자국우월주의에 빠져 있다.

대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오면서 공약 내세우기에만 분주하다. 유권자들의 판단기준도 다양할 터이나 국내 이슈 이상으로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적 상황에 대한 대응은 훨씬 더 중요하다.

북한은 핵·미사일로 위협하고 이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는 강경론으로 치닫고 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은 한·미 및 미·일 동맹으로 엮인 한·미·일 삼각관계 중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회유와 압박으로 시종한다. 남북관계는 물론 한·중, 한·일 관계도 최악이다.

후보들은 개혁을 입버릇처럼 앞세우지만 한반도의 위기적 상황에 대한 인식은 얄팍한 듯하다. 미국의 대북 군사적 타격이 거론되고 있는데도 믿음직한 목소리는 안 들린다. 미국에 특사를 파견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하겠다는 게 고작이다. 중국의 경제적 제재조치에도, 일본의 무례한 외교행보에도 해법을 찾는 움직임은 안 보인다.

동아시아의 지평은 우리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이성적이며 실리적으로 대응하자는 뜻이다. 그 최종 목표는 한국·한국인의 존재감을 지키는 데 있다. 학문적으로도 대외적인 설명변수가 중요하거늘, 하물며 현실 정치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 과정에서 선택이 필요하다면 리더는 국민을 설득하고 호소하는 전략을 내놔야 한다.

섣부른 낙관론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한다. 미국이 도와줄 테지,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위기는 잠시일 거야 식으로 생각하는 동안 한국은 철저하게 무시될 것이다. 안이하고 순진한 감상주의와 자국우월주의도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뿐이다.

독자적인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고 때로는 거래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지혜롭게 임하지 않으면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말 터다. 안락한 종속보다는 자존감을 주는 나라가 낫다. 동아시아의 지평을 중시하는 후보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