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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칼럼] 세금은 ‘내로남불’의 대상 아니다

“이제 증세는 선택 아닌 당위… 소득에 상응하는 세금 내겠다는 자발성 요구돼”

입력 2017-04-2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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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는 불편한 단어다.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더더욱 껄끄럽다. 시혜성 정책은 남발하면서 재원 마련 방안은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리는 것이 정치인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나마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은 이전의 대선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솔직했다.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는 증세를 주장한다. 법인세 감면을 통한 효과를 서민들에게 골고루 나누겠다는 이명박정부 낙수효과의 허구성과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던 박근혜정부의 기망(欺罔)을 경험한 국민들에게 감언이설은 통하지 않을 것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연 평균 조세부담률은 각각 18.5%와 18.45%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7.2%와 18.3%를 웃돌았다. 증세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던 이·박 정부 시절 국민들은 이전 정부에 비해 세금을 더 냈다. 이런 역설은 단순히 경제 규모가 커졌다는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감면 축소, 공제 폐지, 담뱃세 인상 등 사실상 ‘꼼수 증세’를 말하지 않고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선 후보들의 재원 마련엔 닮은 점이 있다. 홍 후보를 뺀 유력 후보 4인 모두 법인세와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상을 내세웠다. 후보에 따라 실천 수단의 얼개가 촘촘하기도 하고 얼기설기 짜인 경우도 있지만 이 두 부문에 관한 한 후보들은 같은 생각이었다. 아쉬운 것은 후보들이 주장하는 증세 정도로는 초대형 공약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수십 만개의 일자리 창출, 노인기초연금 및 아동수당 인상,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 의무자 기준 완화 내지 폐지 등은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다. 하나를 실천하는 데만도 연간 수조원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더 공격적인 증세 수단을 마련하지 않고는 재원 확보가 어렵다. 연간 400조원 정도의 중앙정부 지출은 대부분 용처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대통령의 재량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증세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가장 큰 장애요인은 조세저항에 대한 공포다. 영국 청교도혁명,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 대혁명 등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조세저항과 관련이 있다. ‘혁명의 역사는 조세저항의 역사’라는 금언은 권력이 세금을 얼마나 정치(精緻)하게 다뤄야 하는지를 웅변한다. 세금 납부를 행동으로 거부하는 실질적인 조세저항이 아니라 세금에 대한 부정적인 심리 확산 정도에도 당국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조세저항을 막기 위해서는 세무 당국의 공정한 과세가 전제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의 자의적 세무조사권을 견제할 수 있는 세무조사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증세는 납세자의 각성에서 완결된다. 세금에 관한 한 ‘내로남불’의 경향이 강하다. 적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처럼 나는 한 푼도 더 낼 수 없지만 남이 더 내는 것은 반긴다. 대기업과 부자 증세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인식까지 더해져 속이 뻥 뚫린 듯한 청량감마저 준다. 이제 증세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다. 시대 흐름이 이런 양상을 낳았다. 소득에 상응하는 세금을 기꺼이 내겠다는 자발성이 요구된다. 예컨대 전체 근로소득세 대상자의 48%가 근소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현실은 바뀌어야 된다. 내가 증세라는 단어를 불편해하지 않아야 남도 그렇게 여긴다. 소득 재분배, 자원의 효율적 배분, 경제의 안정 성장이란 조세 정책의 순기능은 그때 비로소 효력을 발휘한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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