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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사모it수다] “딸아, 밀린 관리비 대신 냈다”

입력 2017-05-1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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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대행소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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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밀린 관리비 내고 간다. 더 많이 못줘서 미안해.”

아버지가 남기고 간 쪽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당시 남편은 주중에 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파트타임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었다. 나 또한 취업준비생이던 터라 남편의 80만원 사례비가 생활비의 전부였다.

늘 부족한 생활비 때문에 공과금이 자주 연체됐는데 오랜만에 딸집에 와서 구석구석 청소하던 부모님께 숨기고 싶었던 연체 고지서를 들킨 것이다. 밀린 공과금이 해결됐다는 안도감보다 연체 고지서를 보고 속상해 했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내가 못 먹고 부족한 건 견딜 수 있어도 자식이 힘겨워하는 건 보지 못하는 게 부모 심정 아닌가.

결혼 전 늘 부모님께 “성공해서 꽃길만 걷게 해드리겠다”고 큰소리치던 딸은 신학생과 결혼한 뒤 ‘캥거루족(자립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하는 성인)’이 됐다.

친정에 다녀올 때면 휴지와 샴푸 등 살림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차에 한가득 싣고 왔다. 아버지는 “큰딸이 집에 한 번 왔다 가면 살림이 텅 빈다”고 진담 같은 농담을 하며 멋쩍게 웃으셨다.

이런 딸의 팍팍한 살림살이를 잘 아는 엄마는 김치부터 제철 과일, 생필품 등을 ‘1+1’으로 하나씩 더 구입해 택배로 붙여줬다. 미안해하는 딸을 보며 엄마는 “목회자 사위와 사모 딸이 기도해줘 늘 평안하다. 그걸로 충분하다. 엄마는 사모의 길을 가는 딸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랑스럽다”며 다독여줬다. 사모 역할을 하며 누구한테도 쉽게 꺼내놓지 못한 아픔과 상처도 엄마한테는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 때마다 엄마는 따뜻한 위로를 해주시며 기도의 동역자가 돼줬다.

딸과 사위를 생각하며 부모님은 섬기는 교회 교역자도 자식 같은 마음으로 살뜰히 챙겼다. 또 목회자와 성도 간에 이견이 생길 때면 “사위 생각에 목회자 입장을 먼저 헤아리게 된다”고 했다.

어버이주일을 보내며 부모님 사랑을 더욱 묵상하게 된다. 공과금까지 밀리며 우리가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을 하던 그 광야 같은 시절, 부모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알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다. 이런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은 ‘공급하고 살피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때로는 부모님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랑 중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가까운 것이 부모님의 사랑 아닐까.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은혜로운 어버이주일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 생명까지 주신 하나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에 감사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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